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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Oct 04. 2023

교육부 항의 방문의 기억

이주호 장관 나와라!

전교조 중집은 7월 6일, 4세대 NEIS 사태의 책임을 묻고자 교육부를 항의 방문했다. 항의 방문이란 걸 태어나서 처음 해 본 나는 평소 입지 않는 조끼와 캠핑 바지를 챙겨 입고 세종으로 향했다. 결연한 마음으로 떠났으나 역시 '손이 많이 가는 사람'답게 엉뚱한 곳에 주차했다; 땡볕 아래를 걷는데 멀리서 사무총장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주호 장관 사퇴하라!" "투쟁! 이주호 장관 나와라! 나와라!"


나는 '더워죽겠네 젠장!'을 외치며 주차장인지 들판인지 모를 공터를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중집들이 교육부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서려던 찰나 선글라스를 낀 남성분이 나를 막고 문을 닫아 버렸다. 


"왜 저만 못 들어가게 해요? 저도 면담 당사자예요!"


"저분들도 실수로 들여보낸 겁니다."


"저 교육부 소속 교사예요! 열어주세요!"


"선생님은 특히 중요한 사람일 것 같습니다. 대변인처럼 생겼어요. 들여보내면 더욱 안 될 것 같습니다"


"(뭐??;;) 저 대변인 아니고 대전지부장이에요!!"


"아무튼 중요한 사람이잖아요!"


"(뭐??;;) 우리 대전 조합원들 대표해서 온 거예요. 열어주세요!"


"안됩니다!"


그때 먼 지역에서 새벽부터 달려온 o지부장이 도착했다. 우리는 교육부 담장을 돌며 입구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청원 경찰도 계속 따라붙었다. 정문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o지부장이 창살을 잡고 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에 살짝 당황한 내가 '나도 올라가야 하나?' 하던 찰나 청원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o지부장을 제지했다. o지부장이 공무원증을 던지며 격하게 항의했고 삽시간에 진짜 경찰들까지 도착했다. 험악한 고성과 실랑이가 이어졌다.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피켓을 들고 외쳤다. "이주호 장관 나와라!"


출동한 경찰이 피켓들을 훑어 보더니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엔 이 아이 에스가 뭡니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선생 본능을 참지 못하고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또박또박 말했다. "학교 정보화 시스템이에요. 교사들이 학생 생활 정보나 성적을 입력하고, 공문 처리도 하는 중요한 시스템인데. 전교조가 지금 시기 변경 위험하다고 수차례 경고했는데도 교육부가 마음대로 시스템 체계를 바꿔서 학교가 아수라장이에요. 교육부는 공문 한 장 달랑 보내고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요!" 


안팎에서 벌어진 이런저런 소란 끝에 결국 국장과의 면담이 성사됐고, 전교조와 교육부는 '교육부 장관의 교사를 향한 사과와 대책 안내' 등을 합의했다. 


이번 항의방문의 목표가 (나로선) 이 사태의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터놓고 말해, 4세대 NEIS는 기술과 시간이 결국은 해결할 문제다. 하지만 우리에겐 정부의 엉망진창 정책과 무책임이 현장 교사들을 엉뚱한 일에 소진되게 만들고, 그렇게 낭비되는 교육력과 행정력이 학생들에게 입히는 피해를 지켜보며 쌓여왔던 울분이 있다. 공문 발송이나 면담도 필요하지만 교사들의 분노를 항의 방문 형식으로 '대변'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변인처럼 생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전교조의 이번 항의 방문이 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앞에는 에듀테크, 학력경쟁, 교원정책, 고교정책 등 깊은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과제들이 산적하다. 내가 '이주호 장관 나와라!' 라고 외칠 일이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것 같다. 다음 번 그 자리에는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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