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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Oct 04. 2023

조합원을 믿고 돌파해

전교조대전지부 ‘퇴근길 교사 결의대회’ (2023. 7월 12일)

"우리 대전교육청 앞에 한 번 모여보죠. 목표 인원 백 명!" 


나도 확신을 갖고 한 말은 아니었다. 결의대회 참가 접수 1주일이 지났을 때, 신청 인원은 이삼십 명 수준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 대전시교육청은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쳐 대전지부와의 각종 협의회를 모조리 거부했다. 법외노조 시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결의대회가 실패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거란 걱정에 휩싸였다. 그 암담함이 전의를 불태워 조합원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걸게 했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평소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던 내가 한숨을 쉬며 뒤척이는 날이 이어졌다. 그때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이 말했다. 


"조합원을 믿어. 조합원을 믿고 돌파해." 


처음엔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 아닌가, 마더메리가 렛잇비하라는 한가한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결국 그 방법 뿐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본 뒤엔 믿고 돌파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결의대회 당일 오전, 신청 인원이 드디어 백 명을 훌쩍 넘기 시작했다. 신청하지 않고 온 선생님들 덕분에 준비한 의자와 안내물이 부족해지기까지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성공이었다. 


집회 개최를 결정했던 6월 중순, 내가 끄적였던 계획 노트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있다. '조합원들이 깃발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깃발을 꽂도록', '조합원이 동원되지 않고 주인공으로 서게', '교원노조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교육정책과 교육현안중심 결의대회', '내용과 형식의 조화', '실천할 수 있는 공간부터 확보'... 


대회 후 우리 대전지부 조합원들은 실제 이런 후기를 남겼다. '집회가 이렇게 지적이고 즐거울 수 있다니', '거침없는 기획과 세심한 준비', '교육청에게 할 말 외쳐 시원', '하나 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 '혼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또 오고 싶다'... 배포만 큰 지부장의 제안에 함께 해준 우리 전임들, 집행부들, 무엇보다 손 잡아준 조합원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집행부의 첫 결의대회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이번 집회를 보고 당황한 선생님들도 계셨다. 노조 조끼, 임을 위한 행진곡, 내외빈 소개, 연대단체들의 부재 때문이다. 나는 일부 조합원들께서 불편하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지부장으로서 언제든지 열린 토론을 할 의향도 있다. 다만 최근 대전지부 행사 때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새로운 얼굴들, 편안해진 목소리들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지켜봐 주길 바란다.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도 살펴주길 바란다. 지난 12월 지부장 출마 연설에서 나는 선언했었다. “전교조의 껍데기는 버리고 DNA만 남기겠다”. 나로선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7월 12일 같은 길 걸은 발, 함께 흔들어 준 손, 함께 외쳐준 입, 눈맞춤한 모든 눈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는 조합원들 믿고 이렇게 작은 산 하나를 돌파했다. 


https://news.eduhope.net/25396?fbclid=IwAR0GlHlLFDrCk2F1aEdSDAKi2eP2heiyDt-7nUS79LSzW6GJV6wp0L0w0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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