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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Oct 04. 2023

골방에서 나와

2023 07. 27.

요즘 제가 초임 때 담임을 맡았던 교실 풍경이 자꾸 생각납니다. 

교실은 아이들 숨결로 따뜻하고 활기차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황량하고 외롭고 아득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과 시간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나면 

저는 커다란 교실에 남아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아이들과 학부모를 상담하고, 하루를 돌아볼 틈도 없이 다시 다음 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주위에선 능력있는 신규라고, 잘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저는 커다란 교실에 혼자 던져진, 

선생님의 얼굴을 한 아이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만 이렇게 허덕거리나? 혹시 내가 부족한 선생님인가? 

아이들과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주위 선생님들은 너무 바빠보였고 저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할지도 몰랐습니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뛰쳐 나가고, 난데없는 몸싸움이 벌어지고, 

보호자들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도  

그 상황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숨 막혔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토로하지 못했습니다. 

교실을 오로지 저 혼자서 책임졌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이초 선생님의 소식을 접하고, 

또 같은 마음으로 분노하고 절망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저는 제가 느꼈던 막막함, 그 숨막힘이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우리의 무력감과 절망감이 

골방에 갇혀 점점 더 커져 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결코 우리 개인의 탓이 아니란 걸 절감했습니다. 


저는 다짐합니다. 고인이 된 선생님의 마지막이 헛되지 않도록 

그동안 막막함과 외로움을 홀로 헤맸을 

수많은 선생님들 곁을 함께 지키겠습니다.  

교육권에 대한 법률적 정의조차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제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사실 지난 며칠 간 저는 고인을 추모할 시간도 없이, 

지부장으로서 처리할 상황들에 정신없이 떠밀려 왔습니다. 

조합원들의 다양한 목소리, 

전교조의 30년 역사를 향해 안팎에서 떠밀려 오는 

온갖 비난의 화살이 아프고 환멸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추모제를 기획하신 

우리 대전지부 선생님들께서 일깨워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은 때일수록 우리는 더 함께여야 합니다. 

모두가 힘든 지금 갈라치지 맙시다. 배제하지 맙시다. 

우리 선생님들은 골방에서 뛰어나와 서로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생각만으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그리고 실천으로 바꾸는 힘이 

우리 선생님들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동료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추모를 넘어 

교육을 바꾸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고인이 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위로와 연대의 손길을 건넵니다. 


(전교조대전지부 추모문화제_대전지부장 추모사_2023. 0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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