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희 Oct 04. 2023

메모

7월 27일, 28일

(7월 27일)

이번 사건을 거치며 전교조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초등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다른 익명 커뮤니티들처럼) 혐오 선동이 만연하고, 이제 무수한 댓글들이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전교조가 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른 단체에 비해 못한 것도 아니다. 쏟아지는 비난은 아무리 봐도 선을 넘었다. 하지만 전교조 내부적으로도 통렬히 반성할 지점이 있다. 평가 기준을 '내부'에 두고, 그동안 가져왔던 인재와 재원을 고려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현재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슬픈 와중에도 안팎으로 화가 났었다.  


이번 일을 거치며 이상한 동료애도 생겼다. 온갖 거짓정보와 선동이 판을 칠 때 최대한 사실 관계부터 확인하고, 고인의 명예와 유가족의 뜻을 존중하려 노력했던 조직의 모습은 지켜야 할 DNA란 생각을 했다. 그 한 발 느린 대처가 교사 대중으로부터 온갖 비난과 혐오를 한 몸에 받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요즘 전교조는 숨만 쉬어도 욕을 먹는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필요하다. 나는 조직 보위보다 인간의 품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좋다. 조직이 망한다고 사람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5월 교사대회, 7월 총파업 대회에 다녀온 후 나는 며칠 혼자 시름시름 앓았다. 너무 비현실적이고 허황되다고 생각했다. 종종 내가 최후의 유물론자처럼 느껴진다. 현실을 살지 못하면 과거에 머무는 수 밖에. 어쨌든 오늘은 쉬고 싶다. 


(+) '영원하라', '안망한다', '만세', '우리가 옳다' 이런 댓글 사양한다. 정신 승리가 아니라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

(7월 28일)

모교사노조 위원장이 최근 교육청과의 협의회에 세월호 노란 배지를 차고 나갔다가 조합원들의 항의로 공식 사과까지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노란 리본을 달아본 적이 없지만 누구의 리본을 봐도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가 보군' 그 뿐이라 매우 놀랐다. 


나는 전교조 조끼를 거의 입지 않는다. 덥기도 하고 '뭐 굳이?' 싶어서. 세간의 추측과 달리 조합에서 그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다. 365일 조끼를 벗지 않는 다른 지부장들이 내게 압력이나 눈치를 준 적도 없고, 선생님들도 그러려니 하신다. 딱 한 번 페북에서 어떤 분이 댓글로 내게 조끼를 입으라고 했는데 조합원 페친들이 나보다 더 성질을 내셨다. 


노란 리본, 파란 조끼 등은 표현 방식의 하나일 뿐 추모와 기억의 다짐, 순수성이나 투쟁 정신을 가늠하는 중요 척도가 아니라고 본다. 공식 석상에서 욱일기를 흔들거나 하일히틀러를 하는 정도의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게 아니라면 표현 방식을 강제할 수 있나 싶은데, 어쨌든 그건 ‘순수함’과 정치 결벽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전혀 순수하지 않은(?) 전교조 선생님들이 의외로 쿨하긴 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방에서 나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