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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Nov 07. 2023

교육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

경향잡지 11월호 수록 

관대한 한국 초등 교실?

학교에서 함께 일했던 영어 원어민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제출했던 의견이 있다. 한국 초등 교실 문화와 한국 선생님들의 지도 방식이 매우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교실에서 위험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부적절한 언어 사용으로 수업을 방해해도 한국 선생님들은 이상할 정도로 허용적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본인들 나라의 학교에서는 학생이 당장 교장실로 호출되고 학부모가 소환될 상황인데 제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며 교장 선생님이 어디에 있냐고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묻기도 했다십 수년 전 나는 이들의 의견을 한국 학교가 더 권위주의적이고 엄격하리라는 편견이 깨진 문화 충격 정도로 받아들였다미국 초등학교에 참관을 갔을 때에야 깨달았다. 원어민 교사들이 학교에 교장 선생님이 오긴 하지?” 라고 물은 건 농담이나 조롱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내가 참관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수시로 학교 곳곳에 등장했다수업을 지원하고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교류하고직접 학부모 상담을 했다. 


한국의 선생님들은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혼자일 뿐이었다. 외국과는 달리, 일부 학생의 문제 행동으로 수업이 마비되고 다른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어도 교사가 학생을 제지하거나 교장실 등의 장소로 분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여기 이르렀는가

2010년대 후반부터 학교 현장에서 위험한 징후들이 본격적으로 포착되기 시작했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 복도를 지나가다 아이들 몇몇이 열띤 목소리로 “우리 민원 넣어 달라고 하자!”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나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는데 ‘민원’이란 단어는 이미 아이들에게 일상어가 되어 있었다. 학기 초에 한 학생이 수업 방해 행동을 지속하기에 교실 뒤에 서 있는 타임아웃 규칙을 적용하겠다고 하자 대뜸 “엄마들이 민원 넣는다고 하면요?”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함께 대화해 보자, 회의를 해 보자, 선생님께 제안해 보자.”라는 말 대신 “민원을 넣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언어 습관에까지 영향을 끼친 학부모 민원의 폭주 현상은 언론에 공개된 바와 같다. 


교직 사회 내부 분위기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학교 관리자들의 부당한 업무 지시나 ‘갑질’ 등은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메워야 할 학교 공동체성은 구축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차등 성과급과 교원 평가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 현장에는 해당 정책의 교육적 부당함과 비합리성에 대한 일정한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정책이 도입된 지 10년 이상이 흐르자 차등 성과급과 교원 평가의 논리는 교직 사회에 내면화되었다. 교사들끼리 차등성과급 지급 기준안을 만들며 어느 학년과 업무가 더 곤란한지를 겨루는 분란이 해마다 벌어졌다. 행정 업무 증가, 학교 관료주의 심화, 가시적인 성과와 실적주의가 가속화시킨 개별화와 파편화 속에 교사들은 점점 고립되어 갔다. 


이 와중에 아동학대처벌법은 학교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애초 가정에서 발생한 사안에 대처하기 위해 제정한 아동학대처벌법을 학교 내 사안에 동일하게 적용하면서 학교 현장의 교육적 관계는 파괴되었다. 최소 단위 벌금(5만 원)으로도 사실상 교사의 직위를 잃을 수 있는 아동복지법 개정은 2018년 6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다. 하지만 학부모 또는 학생의 아동학대 주장만으로 관리자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가 이루어지도록 한 아동학대처벌법은 학교 공동체를 파괴하는 무소불위의 힘으로 작동 중이다. 교사들이 의욕적으로 교육 활동을 할수록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면서 불안, 불신, 분노와 학습된 무기력이 심화되었다. 


이것이 지난여름 내내 수십만 교사들이 길거리에 나와 생존권 보장, 교육 활동 보호를 외친 배경이다. 현상의 근원에는 1990년대 말에 들이닥친 교육 시장화 정책이 있다. 교육 시장화 정책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폭력적, 획일적 교육을 대신해 ‘선택과 자유’를 새로운 복음으로 제시했다. 교육은 서비스 상품화됐고,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 수요자, 교사와 학교는 서비스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객은 왕’이다. 고객은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때까지 끝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학부모들은 불량품을 교환하듯 담임 교체를 요구한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공동체적 질서를 통해 배분되지 않는다노동은 철저히 사적으로 수행된다차등 성과급과 교원 평가 등이 담지한 능력주의와 시장 논리는 교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교사 혼자 오롯이 책임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동했다교사는 평가

통제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독재와 폭압의 시대 학교가 군대 같았다면, 선택과 자유라는 시장 논리에 잠식된 지금의 학교는 정글과 같다. 민주적인 사회 아니 최소한의 문명사회는 구성원들의 이견과 갈등을 법과 제도, 민주적 소통과 합의를 통해 해결한다. 하지만 현재 학교에서는 소수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해석에 기댄 아동학대 신고, 쏟아지는 민원, 일부 구성원들의 난동에 학교가 들썩여도 이를 제지할 정당한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이 학교 현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하고 관계를 파괴하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교육권에 대한 법률적 정의조차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교사들은 기본적인 안전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학습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공교육의 목표를 되짚다

혼란의 중심에서 우리가 다시 짚어야 할 것은 공교육의 목표다. 공교육의 목표는 입시나 개인의 출세가 아니다. 보육 서비스 제공도 아니다. 공교육의 목표는 민주 시민 양성이다. 


작금의 학교는 민주 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모습이라 보기 어렵다. 선생님들이 조금만 삐끗해도 범죄자로 몰릴까 두려워 침묵과 무기력이 일상화된 학교는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사고력과 실천력을 가진 시민은 야만적인 정글이 아니라 법과 제도, 대화와 협력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적 공간에서 양성된다. 


교육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이다. 학생들은 안전하고 민주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신뢰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협력하고, 소통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 학교는 오로지 개인의 권리 찾기에만 매몰되어 있다. 교권과 학습권은 개별적 권리로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다. 교사의 교권과 교육권은 학생의 학습권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적 권한이다. 교사의 교권과 교육권을 확보해야 학생들이 권리뿐 아니라 책임, 의무, 협력의 정신을 두루 갖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현시대의 교사들이 외치는 교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닌 교사의 인권, 교사로서 노동할 권리, 교육할 권한을 뜻한다. 교권과 학습권의 부재와 붕괴로 인한 교육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제 교권은 단순한 안전과 이익 차원의 개념을 넘어 민주공화국에서 교사의 교육 활동이 담지하는 공적 기능에 대한 논의로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교권보호 4법’뿐 아니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과 교육부 고시의 적용을 위한 실질적 지원도 절실하다. 


물론 교권과 학습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를 갖춘 후에도 갈 길은 멀다. 학교가 단숨에 유토피아로 변신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권은 생성하여 지켜 내야 한다. 교권 확보를 통한 교육 전문성과 공공성 제고는 사람을 죽게 하는 시장 논리와 자본의 폭주를 저지하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지킬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이 글은 경향잡지 11월호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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