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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Dec 14. 2023

외로운 교사들을 위한 광장

(교육언론창 기고_2023. 12. 12.)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2


외로움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공적으로 대응하는 국가들이 있다. 두 섬나라인 영국과 일본이다. 2018년 영국은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이 초래하는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했다. 일본 정부도 2021년 고독·고립 문제를 담당할 장관과 전담 조직을 마련했다. 외로움은 개인의 감정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사회 체제와 연결된 구조적 사안이다. 소셜미디어 소통이 범람하는 초연결 시대에 인간은 역설적으로 더욱 외로워졌고 이는 각종 사회 병리 현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여름 30만 교사들이 광장에 모여 수차례 집회를 열었다. 교사들이 표출한 분노, 슬픔, 불안, 무력감, 죄책감의 기저에는 민원공화국이 된 학교, 각종 법률 오남용의 부작용, 생활지도 권한과 보호막 부재의 현실이 자리했다. 그 원인으로 교육 시장화 정책과 소비자 중심주의, 구성원들의 무책임과 폭력성, 현장과 괴리된 교육정책, 교육을 입시 경쟁과 동일시하는 풍토 등이 지목됐다. 모든 관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교사들을 벼랑 끝에 이르게 한 이유 그리고 거리로 나서게 한 근원적 원인은 ‘외로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얼핏 보면 교사는 외로울 틈이 없는 직업이다. 교사는 매일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수업한다. 방과 후에도 학부모들과 연락을 나눈다. 학교는 수시로 각종 회의와 위원회를 소집하고 교사들이 활동하는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들의 운영도 활발하다. 하지만 많은 교사들은 자신이 혼자라고 느꼈다. ‘교사로서의’ 나는 외로웠다. 친한 동료 교사들과 나누는 일상 대화만으로는 외로움이 가시지 않았다. 외로움은 구조적이고 다층적이다. 쉽게 털어놓을 수도 쉽게 답을 찾을 수도 없었다.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대부분 학교에서 교사들은 교육적 차원의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다. 학교는 정교한 절차와 범람하는 문서에 잠식당했다. 교육기관이란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교육을 논하기 어색한 장소다. 학교 구성원들은 특정 활동의 교육적 의미보다 그 활동의 절차적 정당성, 민원과 소송 발생 가능성에 관한 대화를 더 자주 더 많이 나눈다. 최근 몇 년 사이 주식과 코인, 부동산 투자로 교직 탈출을 꿈꾸는 이들의 대화도 부쩍 늘었다. 즉 교사는 물리적으로 항상 타인과 함께 있지만 교육인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눌 기회는 부족하다.



교사의 교육활동 계획, 실행, 평가, 보상 등에 교육 외적인 요소들이 지나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승진제도, 차등성과급, 교원평가 등의 인정체계도 교육의 본질과 원리, 민주주의의 원칙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선발과 서열화를 위한 절차적, 기계적 공정성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다. 심지어 이제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조차 교사로서 의견을 표출하기 어렵다. 시민의식이 아닌 소비자 의식으로 무장한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교사는 민원 응대인, 교육 서비스 제공자로 일해야 한다. 교사는 사회와 학교, 구성원들 간의 관계 등 모든 측면에서 교사로서 존재할 근거와 힘을 상실해 왔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행위'(action)라 했다. 행위란 생각을 나누는 활동이다. 자발적으로 서로의 관점을 드러내고 협의하는 소통 과정이 행위이다. 아렌트는 행위를 '정치'라고 정의하며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규정했다. 한국의 교사들은 정치기본권 박탈로 현실 정치 차원(피선거권, 정당 가입, 공천 등)에서 소외된다. 그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생각을 나눌 기회 즉 교사로서 '행위'하고 ‘정치’할 기회도 빼앗겼다. 결과는 공적 영역에서의 고립과 단절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이다. 이는 교사들의 실존과 생명마저 위협했다. 하지만 외로움은 지난여름 역설적으로 결집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마침내 광장이 열렸다.



갈 길이 멀다. 각종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아직 뚜렷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지난여름 가장 ‘정치적’이었던 광장의 한복판에서 정치가 혐오 공격을 당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2023년 여름을 통과하며 깨달았다. 상황을 바꿀 열쇠는 결국 정치뿐이다. 이는 명료한 구호와 대규모 집회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사로서 행위하기, 스스로 생각하기, 자유롭고 평등하게 견해를 나누며 공적 삶과 연대를 재구성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는 교사의 정치적 삶을 위해 열린 광장을 준비하고 있다. 광장에 모이면 교사의 외로움은 해소될까. 글쎄다. 일단 외로움과 고독함은 다르다. 광장에 모여 생각을 나눠도 근원적 고독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길을 정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생각하고 견해를 밝히며 실천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고독하다. 하지만 그 길 위의 우리는 고독할지언정 결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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