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교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희 Feb 25. 2024

교육부 장관을 AI로 바꾸자

교육언론창, 2024. 1. 9.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24



교육부 장관을 AI로 바꾸자. 농담이 아니다. AI는 교육의 구원자다.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에 따르면 ‘AI코스웨어’와 ‘AI튜터’의 적용으로 ‘잠자는 교실’은 깨어날 것이다. AI에게 ‘맞춤형 교육’을 받은 학생은 ‘자기 주도적 학습자’로 변신해 내일의 수업을 기다린다. AI 덕분에 교사는 지식 전수의 의무에서 해방되고 학생의 사회·정서 발달에 주력할 수 있다. AI라는 만능해결사가 존재하는데 오류투성이인 ‘인간’ 장관이 굳이 필요한가. 사회적 합의와 숙의를 논하는 것도 시간 낭비다.



AI 기능의 핵심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다. 인류의 모든 지적 성취를 디지털정보로 변환해 입력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을 작성하면 AI의 능력은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나는 교육부 장관을 AI로 바꾸는 즐거운(?) 상상 속에서 인공지능 구축에 필요한 데이터의 내용과 범위를 고민해봤다.



우선 AI 교육부 장관에게는 다양한 교육관, 지식관,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등에 관한 지식 데이터가 필요하다. 행동주의, 인본주의, 인지주의, 구성주의 등 교육이론은 물론 인간의 성장과 애착 형성 등에 관한 실증적 연구 결과 등도 포함된다. 교육부가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의 디지털 교육 혁신 방안은 오로지 하나의 교육이론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다. 바로 행동주의적 이론과 접근이다.



‘AI 코스웨어’(수준별 학습 자료 제공)와 ‘AI 튜터’(인공지능을 이용해 학습상태 진단과 개선 전략 제공)의 핵심은 단순하다. 학생이 틀린 문제를 반복적으로 연습할 기회를 제공해 오답률을 낮추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행동주의 이론에 기반해 있다. 행동주의는 자극과 반응, 강화, 피드백 등을 학습의 기본원리로 삼는다. 학습 목표를 세부 목표로 분절하고 각 부문의 성취를 기계적으로 더해 학습의 결과를 측정한다.



정부는 앞으로 ‘AI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의 정서 지원에 집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행동주의는 바로 이런 기계적, 이분법적 관점 때문에 비판받았다. 인간의 지식 습득과 정서발달은 분리할 수 없다. 인지와 정서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융합하는 화학작용에 가깝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정서 함양 교과인 음악과 미술 학습에 인지적 요소가 작동하고, 수학과 과학 학습에 정서와 의지 등의 요소가 개입한다. 많은 교육사상가와 실천가들은 교육은 정보의 조각들을 무더기로 쌓아 올리는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경험의 지속적 재구성(듀이)과 내면화, 숙성의 과정(비고츠키)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실 모든 교육사태를 통찰하는 단 하나의 완벽한 교육이론은 없다. 행동주의, 인본주의, 경험주의 등에 모두 나름의 성과와 시사점이 있다. 그러나 마치 세상에 단 하나의 이론만이 존재하는 듯 착각 혹은 맹신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다양한 교육이론에 관한 데이터를 입력받은 AI 교육부 장관은 어떨까. 적어도 역사적으로 숱한 비판과 도전에 직면했던 하나의 고전적 관점에 첨단 기술의 외피를 둘러 과대포장하는 민망한 코미디는 연출하지 않을 것 같다.



정부의 디지털 기반 교육 청사진에 따르면 학생은 ‘알아서 공부한다’. 자신에게 맞는 맞춤 교육자료가 제공되면 스스로 학습하고 심지어 내일의 학습을 고대한다. 이 역시 교육부가 인지하고 있는지와 별개로 ‘개인’의 의지와 ‘자유’에 대한 신념 내지 이념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자유민주주의’ 이념 논란에서 보듯 ‘개인’과 ‘자유’라는 단순한 단어에도 다층적 함의와 맥락이 담긴다. 개인과 정권은 특정한 이념과 신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교육정책 설계에서 중시할 것은 객관적 현실이다. 'AI 디지털 교과서'만 제공되면 알아서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이 현실에 과연 몇이나 될까. 학교에서 단 하루만 수업해 본 사람도 이 전제의 허무맹랑함을 안다. 알아서 학습하는 혹은 ‘그런 듯 보이는’ 아이들의 곁에는 대개 사회, 경제, 문화 자본을 갖춘 조력자(주로 부모)가 있다. 잘못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정책은 가정 조력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의 불평등 상황을 심화시킬 것이다.



다음으로 입력할 데이터는 에듀테크 개혁의 (흑)역사다. 스마트 교육, 사이버교육, K-MOOC, ICT 교육, 유러닝 등 새로운 교육 기술의 도입은 매번 야단법석을 일으켰다. 그러나 무수한 정책들이 호언했던 혁명적인 변화는 투자한 시간, 예산, 노동력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물론 AI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 중이고 미래가 과거와 같으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무엇도 배우지 못하는 사태를 무한반복해서는 안된다. ‘AI 의사’의 원조격인 IBM의 ‘왓슨’은 한국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복잡한 의료 데이터는 입력 자체가 힘들고, 교육과 마찬가지로 치료에도 관계와 접촉이 중요하다. 의료계는 AI가 의사의 보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결코 의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기본적인 교육학 지식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갖춘 AI 교육부 장관은 현 정부가 제시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지 않을까.



“나는 학생이 푼 문제를 채점하고, 학생이 작성한 에세이를 알고리즘에 의해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의 정서 갈등, 인지 역동, 가정 배경, 인간 관계 등을 직관적으로 읽어낼 도리가 없습니다. 학생이 시시각각 발산하는 비언어적 표현을 간파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증명했다시피 인간은 관계와 교감을 통해 학습하고 성장합니다. 그래서 학생에게는 책임을 갖고 이끌어주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학생에게 수동적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주체로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집니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훌륭한 교사란 어떤 모습인지, 교사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인간인 당신들조차 부실한 교원양성 프로그램으로 비판받고 있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맨몸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몸으로 익힌 실천지식은 암묵적 성격을 가집니다. 그래서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데이터와 알고리즘 단계에서 우리를 아이들을 가르칠 교육의 주체인양 설정한 인간들은 무모하고 무책임합니다.”



AI 교육부 장관은 위와 같은 비난과 질타를 남길지 모른다. 나의 상상이 지나치게 냉소적인가.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시도교육청 교육예산이 대폭 삭감된 가운데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AI 활용 교육을 위해 3년간 매해 5500억원을 지출하겠다고 밝혔다. 스웨덴, 캐나다, 핀란드 등의 국가들은 디지털 학습을 줄이고 종이책, 손글씨 교육 등을 되살리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고도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학생에게 관계와 상호작용을 다시 빼앗고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쥐어주겠다고 한다. 교육부 장관을 차라리 AI로 바꾸자는 나의 한탄은 냉소적이고 자조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교육부의 무지한 망상이 초래할 교육 현실은 파괴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이다.



“나는 더 많은 컴퓨터로 학교를 돕고자 세계의 그 누구보다 노력했다. 하지만 그 결과 확신하게 된 것은 기술은 가장 중요한 게 아니란 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채워 줄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반응’하는 컴퓨터가 아니라 ‘이끄는’ 주체이다” (스티브 잡스, Steve Jobs Interview, Computerworld(Oct. 6, 20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