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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Feb 25. 2024

학교 안전사고 관련

교사 '소송 대리' 및 '형사책임 면제' 법안 발의 준비

오래 전 일이다. 배우자 직장에 놀러 갔는데 그의 책상 위에 '내용증명'이라 쓰인 파일이 올려져 있었다. 읽어보니 험악했다. '당신이 만든 시사프로그램이 우리 사업에 막심한 손해를 끼쳤으니 가만있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괜찮아? 왜 말 안했어?” 나는 걱정스레 물었는데 배우자는 쿨하게 답했다. "아 그거?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마" 나는 그가 나를 위해 애써 담담한 척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 뭉클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애써 담담한 척을 한 게 아니라 정말로 담담했었다. 내용증명을 받거나 고소를 당하면 물론 정신적 부담은 발생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회사 차원에서 법적으로 대응했고 실제 다른 사건으로 동료피디가 고소를 당했을 때도 소송 대리와 벌금까지 모두 회사에서 책임지고 관리했다. 나는 그때부터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왜 교사들은 교육활동 중 발생한 각종 소송과 민원을 맨 몸으로 ‘혼자’ 감당하고 있을까. 



교사는 다수의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한 온갖 사건 사고의 책임을 홀로 감당한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학교안전공제회에서 치료비가 지급되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주의감독 소홀을 이유로 교사 개인에게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보상금을 요구한다. 최근에는 학교에 비치된 태블릿과 학생 휴대폰의 분실과 파손마저 교사에게 배상 책임을 묻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관과 관리자의 법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안내와 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교육활동 중 발생한 안전사고에 관한 소송은 기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청장과 해양경찰청장은 경찰이 직무 수행으로 인해 소송을 수행할 경우 변호사 선임 등 소송을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직무 수행으로 인한 형의 감면’을 명시했다. 소방관 역시 ‘소방기본법’에 따라 소방활동에서 발생한 형사책임을 감경 혹은 면제받을 수 있고 소방청장, 소방본부장은 소송수행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법적 안전망을 구축해 경찰과 소방관이 적극 행정을 펼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각종 소송과 배상의 위협에 노출된 교사들의 교육활동 위축 현상은 심각하다. 지난해 전교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소송과 배상의 위험을 심하게 느낀다고 대답한 교사의 비율은 80%를 넘었고, 이와 같은 부담이 교육활동을 위축시킨다고 대답한 비율은 100%에 달했다. 이에 전교조는 지난해부터 여러 법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교사의 교육활동 관련 소송의 기관 대리, 형사책임 면제의 내용을  담은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1월 22일, 우리가 처음 만난 국회의원은 내가 사는 대전 유성(갑)의 조승래 의원이다. 그는 현장 교사들의 고충에 깊이 공감하며, 교사들이 민원과 송사의 위험에 노출되어 교육활동에 매진할 수 없다면 이는 곧 학생의 학습권과 다양한 교육활동의 기회의 박탈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했다. 


조승래 의원은 교육기본법, 교원지위법, 학교안전법의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며 아울러 관련법에 학교라는 공간, 교육적 행위의 정의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필요하다면 특례법 발의도 검토할 수 있다. 조 의원은 지난 해 학교 내 아동학대 사안 처리를 위한 법 개정을 위해 방문했을 때도, 교육정책에 대한 식견이 높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분이라고 느꼈었다. 앞으로 전교조는 총선 의제 선정 활동과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시민적 공감대도 넓혀갈 계획이다. 


교권4법이 개정됐지만 황폐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굳이 에두를 것 없이 내가 서있는 땅, 유성에서 한 걸음을 내뎠다.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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