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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Feb 25. 2024

‘일류 경제도시’ 에서 사라진 인간, 교육 그리고 품위


저는 작년에 처음으로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 참가했습니다. 추모사를 낭독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낯설고 어색한 기분으로 참석했던 대전현충원 기억식에서 저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이 울고 말았습니다. 바다에서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고 세상을 떠나신 선생님들, 꽃 같은 아이들, 이웃들, 세월호 구조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하신 소방관들에게 저는 마음속으로 사과했고, 기억하겠다고 그리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처음 만난 지역민들과 한마음으로 손잡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대전시가 제공한 소박한 보조금은 그렇게 쓰였습니다. 각자의 삶에 휩쓸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던 저와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참사를 다시 기억하고 다짐하게 했습니다. 세상에는 돈과 이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떠올리며 우리가 연결되고 연대하게 했습니다.


보조금 전액 삭감의 근거를 묻는 시민사회의 질문에 대전시는 ‘더 많은 시민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단답형 답문만 남겼습니다. 대전시정의 책임자인 이장우 시장, 대전교육의 책임자인 설동호 교육감은 2023년 기억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으능정이 거리에서 수많은 시민과 아이들이 모여 치른 ‘기억다짐 문화제’에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시민 운운하는 대전시의 일방적 통보와 어설픈 해명은 낯 뜨거운 변명일 뿐입니다. 


이장우 시장은 대전을 '일류 경제도시'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대전시 거리 곳곳에 걸린 일류 경제도시 현판을 볼 때마다 저는 아이들을 걱정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인간이 사는 도시를 일류, 삼류 따위의 등급으로 나누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대전시민들의 자부심이었던 과학 도시의 정체성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21세기의 과학은 인간을 중시하며, 재난과 참사를 최소화하고, 기회와 나눔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대전시는 올해부터 결혼하는 모든 부부에게 5백만 원의 장려금을 지급하겠다고 합니다. 작년 인구 144만의 대전시가 세월호 보조금에 지출한 금액은 630만원입니다. 수천 명의 시민이 참사를 기억하며 연대하는 행사를 위해 지출하는 예산 6백만원을 아끼면 위대한 일류 경제도시가 이룩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대전의 아이들에게 ‘일류 경제도시’가 아니라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지 않는 사회, 생명과 안전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회를 물려줘야 합니다. 대전의 아이들이 자본과 효율의 논리 못지않게 인간의 생명과 안전의 가치, 배려와 나눔을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교육받고 자라나길 바랍니다. 


잊지 맙시다. 교육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작동하는 구조와 방식, 어른들의 행동과 가치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 없이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상 발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언문_2024. 1. 22_세월호 참사 지원조례 보조금 전액 삭감 규탄 기자회견_주최: 세월호 참사 10주기 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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