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칼럼 (2024. 03. 07)
연결될 수 있다면
수년 전 한 언론에 ‘심리학 과잉 시대의 학교’라는 글을 기고했다. 글을 쓴 원인의 8할은 ‘짜증’이었다. 심리검사 결과로 개인을 함부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짜증.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흐름에 대한 짜증. 이론을 무분별하게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짜증. 심리학의 지나친 대중화와 상품화에 대한 짜증. 설상가상 MBTI 광풍마저 불어닥쳤다. “당신은 T가 분명하다” 따위의 말을 들으면 난 웃으면서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심리학의 존재 의의에 터무니없는 반감이 생길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지난 2월 22일 대전지부 운영진 연수에서 ‘조직 안정성 강화, 팀워크 향상 방법’에 관한 연수를 했다. 조직심리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설계한 간단한 프로그램이었다. 힐링, 치유, 상처, 회복, 공감과 같은 단어는 물론 코칭, 멘토, 조직, 대인관계 기술과 같은 표현조차 질색하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굉장한 전향이다.
연수의 목적은 간단했다. 2023년 대규모 교사 집회가 이어지던 시기, 지부를 운영하고 많은 교사를 만나면서 ‘교사 연대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사들이 연결될 수만 있다면 심리학, 정신분석학, 음악, 미술 등 가릴 것이 없었다. 가능한 모든 이론과 실천의 활용이 필요했다.
각자도생의 늪
학교는 각자도생의 늪에 빠진 지 오래다. 현장의 혼란, 교사와 학생 상처의 가장 큰 원인 역시 경쟁적인 교육 시장화 정책, 소비자 중심주의 그로 인한 ‘파편화’이다. 시장화 논리는 학생과 학부모를 ‘수요자’, 교사와 학교를 ‘서비스 공급자’로 자리매김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객은 왕'이며 원하는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즉시 민원을 제기한다. 불량 상품을 교환하듯 담임 교체도 요구한다. 자본주의는 공동체적 질서에 따라 노동을 배분하지 않는다. 차등성과급 논리처럼 일을 많이 한 개인에게 돈만 주면 그만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터에서 노동은 사적으로 수행된다. 교실에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교사 혼자 오롯이 책임을 떠안는다. 교사들의 상처와 파편화는 사회와 학교의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있어 개인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없다. 연대체가 필요한 이유다.
미국 사회 운동의 전설, 사울 알린스키(Saul Alinsky)는 ‘조직화’(organizing)가 최대 자산이라고 말했다. ‘조직화’란 약한 사람들의 힘을 키워주는 것, 포기한 자들에게 삶의 의욕과 생기를 불어넣는 것, 그들이 스스로 일어나 걷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조직가는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 조직화를 위한 의사소통은 ‘청중의 경험 안’에서, 타인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알린스키에게 영감을 받아 지부에서 진행한 ‘조직 안정성 강화’ 연수에 사실 신선한 내용은 없었다. 팀 소속 신호 보내기, 신규 조합원을 정착시키기, 구성원들과 정기적 휴식 시간을 갖고 지나칠 정도로 감사를 표시하기, 즉석 멘토링과 작은 도움을 주고받는 방법 등에 대해 논의했다. 전략 대부분이 말은 간단해도 실천이 녹록지 않았다. 중요한 건 참가한 교사들이 교사 연대체 형성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자신을 조직가이자 네트워크의 구심점으로 인식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조직화’는 호객 행위와 다르다. 조직화는 소비자 정체성으로 뭉친 이들을 그저 하나의 깃발 아래 모아두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조직화는 교사 한 명 한 명을 주체로 세우는 교사 시민 양성 과정에 가깝다. 교육에 공화주의적 원칙을 접목해 궁극적으로 교육자치와 학교자치를 위한 구조적 인프라를 형성하는 일이다. 조직화된 교사들은 누군가 옳은 결정을 내려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우리의 삶과 교육의 방향을 스스로 이끌 힘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느리더라도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연대의 시작
내가 일하는 학교, 내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교사 연대체를 일구는 과정은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훨씬 더 많은 품이 들고 더 분명한 목표 의식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소위 페트병 사건으로 알려진 H초 사건이 공개되었을 때 주먹을 쥐고 다짐했었다. 법과 제도는 돌아가신 선생님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을 활용할 공동체의 부재, 마음 열고 소통할 공동체의 부재가 교사들을 소진과 죽음으로 몰고 있다.
연대체의 필요성에 동의해도 어디서부터 조직화를 시작해야 할지 암담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일단 잠시 고개부터 들어보자. 정신없이 바쁜 3월이지만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한 발짝만 나아가보자. 숨막힐 듯한 긴장과 불안, 언제 끝날지 모를 아득함과 분주함을 내 곁의 동료들과 나눠보자.
혼자가 아니다. 숨기지 말고 꾸미지도 말자. 상처받고 무능해 보이는 나, 경력 교사지만 여전히 두렵고 실수투성이로 헤매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내 보자. 그것이 조직화와 연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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