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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r 13. 2024

교원행정업무경감을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

교육언론창_2024. 03. 12.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56

지난 2월 28일 ‘학교폭력 사안 처리’ 관련 교육부 지침이 발표됐다. 퇴직 경찰과 퇴직 교원이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맡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가 새로운 정책의 골자다. 애초 현장 교원들은 ‘학교폭력예방법 전면 개정’을 통해 지나치게 넓은 학교폭력의 정의부터 바로잡기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교육부는 현장의 혼란스러운 참상을 오로지 ‘교원행정업무 부담’의 문제로 축소했고 결국 뚜껑을 열자 업무 경감 효과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학교의 책임교사는 전담조사관이 사안 조사 시 ‘동석, 증빙자료 관리, 장소와 자료 제공’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퇴직공무원들의 교육 전문성과 업무 수행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또한 위촉직은 책임과 권한의 한계가 있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교원노조와 단체들은 행정업무에 인력관리 업무까지 더해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 정도면 병이다. 교육부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하는 패턴은 다음과 같다.


사업을 벌인다->업무가 증가한다->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없다->현장의 불만과 항의가 빗발친다->교육청과 교육부에 민원이 접수된다->정부는 업무 경감을 위해 학교에 ‘책임과 역할이 다소 모호한’ 인력을 채용한다->예산 지출은 늘었는데->현장은 업무경감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다시 항의와 민원이 빗발친다->교육부는 또 다른 인력을 채용한다->이하 무한 반복


‘교원행정업무경감’을 목표로 학교 현장에 배치된 인력에는 전산실무사, 교무실무사, 행정실무사, 방과후 실무사, 기초학력 향상 지원인력, 특수교육 지원인력, 늘봄학교 행정 지원인력 등이 있다. 행정업무경감 효과성에 대한 현장 의견은 분분하다. 학교 운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구성원들은 물론 수없이 많다. 하지만 학교장의 리더십, 구성원의 개별 역량에 따라 학교별 협업 양상과 업무경감 효과가 천차만별인 건 엄연한 사실이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 역시 개별 조사관의 역량이 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정책의 성패가 개별 구성원들의 역량에 달렸다는 건, 결국 설계 자체가 엉성했다는 뜻이다. 이 인력들의 업무가 다소 모호하고, 책임의 범위가 제한적이란 점이 끝내 현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도 결국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최종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교육은 단기간에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성과를 도출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이 단순한 진실을 끈질기게 외면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시행정 사업을 펼치고 단기 인력을 양산했다. 한번 생긴 업무는 여간해선 없어지지 않는데 매번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니 업무 총량은 늘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교육부는 교육청과 학교에 업무경감이란 ‘업무’를 부여하고, 교육청은 공문 수를 줄이기 위해 공문 한 개에 여러 사업을 구겨 넣는다. 사라진 줄 알았던 사업이 다른 사업과 슬쩍 연계되어 있기도 하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교육부는 교원행정업무의 화수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부 폐지가 현재로서 요원하다면 차선책은 교육자치 시대에 걸맞는 교육청과 학교장의 권한 확보다. 교육청 업무의 90%는 교육부 사업에서 비롯된다. 1) 교육청이 교육부와 외부 단체의 사업을 거부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필요하다. 물론 많은 교육감과 학교장이 쓸 수 있는 권한조차 활용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청 내에 교육전문직보다 일반행정직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단 사실도 교원행정업무경감에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의 무한 고리가 답이 될 순 없다. 선출직인 교육감, 학교 운영의 총책임자인 학교장을 덮어놓고 불신한다면 교사를 믿어달라 요구할 근거 역시 없다. 먼저 자치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평가는 그 다음이다.


교사업무 분업 체계 개편 논의도 필요하다. 수업에 집중하는 교사, 생활지도에 집중하는 교사, 교무행정에 집중하는 교사로 협업 체계를 정비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경기도교육연구원’의 ‘교무기획전담교사제’ 등). 세부 사항은 숙의를 통해 다듬어가면 된다. 핵심은 땜질식 단기 인력 채용은 답이 아니란 점이다. 현장에 필요한 건 업무 총량 감소, 교육부 권한 축소, 단기 외부인력 채용이 아닌 적정한 교사 수 확보와 분업 체계 개편이다.



아인슈타인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행위’를 ‘미친 짓(Insanity)’으로 정의했다. 교원업무정상화를 위해 무작정 외부의 힘부터 빌리는 방식은 종국에 늘 실패했다. 당장의 필요와 안정을 위한 즉각적 처방의 유혹에서 벗어나자. 소용없는 방법이라면 버리는 게 답이다. 버려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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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사 불신, 홍섭근, 테크빌교육, 2019, p.286

2) 교사 불신, 홍섭근, 테크빌교육, 2019,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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