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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배반’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이다. 누가 봐도 파이프로 보이는 이미지 하단에 적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글귀는 '실체'와 '명명' 사이의 관계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초현실주의는 이미지, 언어, 사고의 도식적 관계를 전복하며, 사회적 약속 너머의 본질과 발상의 전환을 추구한다.
최근 교육부는 늘봄지원실장에 '임기제 교육연구사'를 배치한다고 밝혔다. 기존 교사를 2년제 연구사로 차출하여 늘봄업무를 교원에게서 분리하겠다는 방안이다. 교육부는 초현실주의를 표방하는 정부 부처로 거듭날 모양이다. 누가 봐도 교사인데 ‘이 사람은 교사가 아니다’, 누가 봐도 교사의 업무인데 '이것은 교사의 업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사회적 약속 너머의 본질과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늘봄 임기제 연구사,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교육부는 임기제 연구사 선발 규모만큼 교사 신규 채용 인원을 순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 공식 문서 어디에도 순증 규모와 구체적인 계획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대전에 배치될 늘봄지원실장은 45~75명 정도이다. 올해 대전 초등교사 신규 임용 인원은 10명이었는데, 4배를 훌쩍 넘는 간극을 메우는 방법은 초현실주의적 미지수다.
공무원 정원 규모와 예산 결정 권한은 교육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에 있다. 세수와 학령인구는 급감했고, 그동안 기재부와 행안부는 지속적으로 교사정원을 감축해 왔다. 설령 교육부의 바람대로 기재부가 올 한 해 교사정원을 대폭 늘린다 해도, 내년부터 정원 감축 기조에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건다면 결국 조삼모사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고 임기제 연구사 제도가 폐지되면 해당 업무가 고스란히 학교 현장과 교사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2006년 방과후학교 전면 도입 당시에도 정부는 인력 지원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정부 책임자가 바뀌자 관련 예산은 모조리 삭감되었고, 이후 20년 동안 방과후업무는 현장의 수많은 교사에게 과중한 업무 부담과 교사 정체성에 관한 번뇌를 안겼다.
지난해 5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늘봄 비교과 교사’ 제도 도입을 발표했다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하지 말라’라는 현장 여론이 빗발치자 슬며시 철회했다. 또한, 장관은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학교와 교원에게 늘봄 업무 부담을 전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가 불과 4개월 뒤 ‘교사가 일정 기간 늘봄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라고 입장을 변경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정책 제안 끝에 내민 카드가 늘봄 임기제 연구사 제도이다.
그동안 현장에선 늘봄정책에 관한 반대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늘봄 임기제 연구사가 받게 될지 모를 인센티브, 행정업무만 수행하는 교사 직군에 대한 기대감 등이 작용해 긍정적인 여론도 일고 있다. 현재 늘봄지원실장 정책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단체는 전교조 뿐이다.
늘봄 임기제 연구사에 대한 교육부의 구체적 계획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일부 시도에서 수년간 실시했던 '임기제 장학사' 제도는 설계상의 미비점과 지원자 부족으로 실패했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순환보직 형태의 행정교사 직군 생성에 대한 논의는 분업체계 개편을 위해 필요하지만 업무 총량에 대한 전제 조건을 살펴야 한다. 업무 총량 증가의 위험성을 안고 행정교사 제도를 섣부르게 도입하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저출생과 돌봄 문제 해결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로 집중된 사회적 돌봄 기능은 점진적으로 지역 사회로 분산시켜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돌봄 책임 강화, 그 길이 멀지만 가장 정확한 길이다. 중앙정부는 '늘봄'이라는 하나의 획일적 돌봄 모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각 지역이 지자체 현황과 규모, 지역 사회 인프라에 맞게 다양한 돌봄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장기적 지원안을 마련해야 한다.
멀지만 정확한 길, 가장 현실적인 질문
누군가는 '현실을 보자'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교육행정직과 교육전문직은 암묵적 긴장 관계에 놓이는 만큼, 교육행정직이 아닌 교사가 늘봄실장 자리를 맡아야 교사 집단에 이익이란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현실이 강퍅할수록 현실주의를 가장한 근시안적 대안이 꿈틀대기 마련이다. 이런 때일수록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돌봄 정책에 대한 철학, 장기적인 로드맵도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주먹구구식 정책안을 던져대는 교육부의 행태는 현실적인가. 교사가 국정과제 수행하다가 '짬내서 수업한다'는 자조와 한탄이 들끓는 교육현장의 모습은 현실적인가. 주 69시간 노동시간 연장을 시도했던 정부, 어른들 노동시간 늘리자고 아이들이 집 밖에서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연장하려는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노동관, 인간관은 과연 현실적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놓지 말아야 할 가장 '현실적'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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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희는 18년 차 초등교사다. 2023년부터 전교조 대전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2017, 생각비행)의 저자이며, '선생님도 학교 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상처 입기 전에 알아야 할 현명한 교권 상식)'(2021, 창비교육)의 공저자다. 그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교육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