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9. 07.
내가 무럭무럭 자라서 의미있는 일을 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나를 든든해하면서도 안쓰럽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조심스레 내비치시지만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나는 뜨겁게 차가운 사람이고 내가 종종 뿜는 날카로움은 양날의 검이다.
믿거나 말거나, 내 딴에는 인내의 연속이다. 100을 갈 수 있는데 늘 90 언저리에서 수위를 조절한다. 내 개인의 생각과 단체의 입장, 대중의 의향을 조율하고, 미래의 지향과 현재의 조건을 계산한다. 세상만사 모든 게 정치다. 조율과 계산은 나의, 어쩌면 모두의 의무다.
그러다 종종 임계점에 다다른다. 이렇게 참고 참아서 도대체 남는 게 뭐지? 이건 마치 게이에게 원만한 사회 적응과 세속적 성공을 위해 성정체성을 숨기라는 것과 같지 않나. 설령 의미있는 무언가를 남긴다 쳐도 그때 이미 나는 내가 아닌데, 나 없는 내 인생 따위가, 이 따위 구호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싶어지는 거다.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고, 위를 바라보면 분명 망하기 일보직전인데 아래를 보면 작은 희망이 보이고, 함께 손을 잡은 것 같다가도 돌아보면 드넓은 우주에 철저하게, 처절하게 나 혼자 뿐이다. 관람차에 갇혀서 매일 꼭대기와 바닥을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