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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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았던 12월 3일 밤이 지나고 찾아온 4일 아침. 대전지부 사무실에는 어수선한 긴장과 분노가 흘렀다.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2차 계엄 가능성에 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계엄 사태를 단순한 촌극으로 일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심각한 내란 범죄라는 주장도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12월 7일 토요일은 원래 서울에서 민중대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4일 아침, 우리는 고민 끝에 지부에서 대절한 서울행 버스 신청 링크를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의 다른 교사들에게도 안내하기로 했다. 계엄 사태 해결을 위해선 어느 때보다 폭넓은 참여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집회 안내 메시지를 받은 교사 중 일부로부터 항의 답장이 빗발쳤다. ‘정치적 선동을 하지 말라’, ‘교사에게는 정치기본권이 없으므로 중립을 지켜라’, ‘정치적 메시지가 불편하다’ 등 예상보다 격한 반응에 잠시 멈칫했다. 정치 중립 위반을 사유로 고발과 징계의 칼을 휘둘러온 교육부 생각도 났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는 생명, 안전, 공화국의 위기를 불러올 문제로 지체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12월 7일, 탄핵 버스로 변모한 차량은 45명의 교사를 태우고 대전에서 출발했다. 비조합원 교사들도 상당수 버스에 올랐고 개별 이동한 교사들도 서울에서 합류했다. 항의 메시지 사연을 털어놓자 한 비조합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불편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나처럼 말없이 지지하고 버스를 탄 교사도 있다. 옳은 길을 가고 있으니 힘내라’. 버스는 한숨과 분노를 가득 안고 대전으로 돌아왔지만 1주일 뒤인 14일, 결국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사람들은 말한다. ‘국민과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새로 쓰였다’. 응원봉, 선결제, 전 연령대 특히 젊은이들의 참여가 빛나는 집회였다고 말이다. 동의한다. 한국은 이제 독재와 계엄령이 가능하지 않은 국가다. 심지어 군인조차 시민을 총칼로 위협하지 않았다. 시민이 밀면 밀려나고, 소화기로 저항하니 물러났던 무장 군인들은 군인이라기보다 제복 입은 시민이었다. 한국의 시민교육은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법치주의, 삼권 분립, 입헌주의 개념을 인지하고 감각하지 않았다면 일촉즉발 계엄 사태는 결코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흘러가지 못했을 것이다.
산적한 질문과 과제들도 존재한다. 윤석열이란 개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정치, 경제, 사회, 교육적 배경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초법적 사태를 ‘사전에’ 막을 방도를 법과 정치적 측면뿐 아니라 교육적 측면에서도 찾아야 한다. 민의의 상징인 국회가 어떻게 민의를 배반했는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는 언론이 어떻게 가짜뉴스와 선동의 놀이터로 전락했는지, 우리 교육이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가치와 절차를 내면화하는 시민을 기르고 있는지 깊고 냉정하게 성찰할 때다.
한편 나는 고민하고 있다. 빗발쳤던 항의 메시지, ‘교사에게 정치기본권이 없으므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해선 안 된다’라는 일부 주장을 곱씹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거나 ‘당신이 해결의 일부가 아니라면 문제의 일부다’라며 준엄하게 꾸짖으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아닌 ‘우리’가, 개념 차원이 아닌 ‘현실 정치’ 차원에서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자 ‘담’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마주했을 뿐이다.
실제 12월 3일 밤, 경찰이 국회 진입을 막자 우원식 국회의장 등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처리를 위해 국회 담장을 넘었다. 반면 어떤 국회의원은 입구를 막은 경찰들에게 말로 항의만 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스스로 담을 넘는 자와 누군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자. 우리는 다양한 행동 양식과 결정을 포용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만약 모든 의원이 누군가 열어줄 때까지 문 앞에서 말로 주장만 펼쳤다면 그날 밤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통과될 수 없었다. 문을 열라고 큰소리로 요구만 했던 국회의원은 결국 표결에 참여조차 할 수 없었다.
교사 정치기본권 쟁취를 위해 우리는 담을 넘어야 할까, 문이 열릴 때까지 항의하고 주장하며 기다려야 할까, 틀에 갇힌 침묵은 누구의 이익이 될까, 징계 위험에도 불구하고 시국선언에 동참한 1만 5천여 명의 교사들은 과연 담을 넘은 걸까. 소수 그룹이 아닌 교사 다수가 저 담을 넘기 위해, 아니 저 담을 ‘함께’ 무너뜨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거짓말 같았던 그 밤은 지났지만 질문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출처 : 교육언론[창](https://www.educh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