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첫 출근, 뼈다귀 해장국

2025. 2. 19.

by 김현희

전입 학교로 첫 출근을 했다.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유난한가 싶을 정도로 나는 공간 구조나 공기질 따위에 민감한 편이다. 어두침침한 복도, 석면 자재, 좁은 주차장, 귀신 나올 것 같은 화장실 등에 질색팔색을 한다. 전입교는 매우 오래된 학교답게 운동장과 주차장 부지가 널찍하고, 작년에 공사를 모두 끝내서 공간이 전체적으로 밝고 단정했다. 5학년 담임을 맡았고 10학급 규모의 작은 학교라 업무가 적진 않은데 별 걱정은 안 된다. 운동 경력 제로 상태에서 맨 땅에 헤딩하며 지부장 임기까지 마쳤다. 대단한 성과랄 건 없어도 최소한, 존경하는 동료 전임들, 신뢰해 준 조합원들과 함께 폐허 위에 온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씨앗을 심었다고 자부한다. 스트레스와 책임감에 짓눌려 얼굴이 노랗게 떠서 버텼던 날들도 있지만(한 시기의 사진을 보면 정말 그러하다;) 그럼에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진화했다. 두려울 게 없다.


새로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학교에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이들의 기초학력 문제, 생활지도의 난도는 꽤 높은 편인 듯했다. 특히 올해 5학년 아이들이 그동안 사건 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어련히 열심히 가르쳐서 올려 보내셨겠어요. 제가 열심히 할게요 하하하!" 드릉드릉 시동을 걸었다.


예전에 담임할 땐 너무 완벽하려고만 했었다. 젊은 교사의 강박 같은 거였을 거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시간에 쫓겼고 아이들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며 닦달하는 경향도 있었다. 먼 길 돌아서 온 지금은 나를 포함한 우리 교실의 모두에게 숨 쉬며 자랄 넓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물론, 꽂히면 몰아붙이는 습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3일째 뼈다귀 해장국을 먹고 있다. 종종 한 가지 음식만 주야장천 먹곤 한다. 특정 메뉴가 맛있으면 맛있어서 계속 먹고, 맛이 없으면 맛있는 식당이나 맛있게 느낄 나만의 조건을 찾을 때까지, 이데아를 쫓듯 헤매며 계속 먹는다. 이번 뼈해장국은 맛이 있어서 계속 먹는 경우다. 오늘은 식당 직원이 아는 척을 하며 반가워했다. 문득, 밥을 잘 먹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세상은 그간 내게 무척 호의적이었고, 나는 그 호의를 누리기만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히 누리고 있는 것들은 예민하게 감지하되, 베풀 땐 뒤도 돌아보지 않는 무심한 사람이 되자,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이 먹는게 좋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으며 2025년을 자꾸만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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