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교육

살아가자

2025. 3. 3. (개학 전날)

by 김현희

고백한다. 사실 나는 요리를 못한다. 내가 온라인에서 선보였던 화려한 바나나 요리만 목격했던 분들은 추측하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나의 실력은 ‘요리를 못한다’ 수준 너머 그 어딘가에 있다. 주위 사람들 말에 의하면 같은 고기도 내가 구우면 맛이 없다. 라면이나 계란프라이에서조차 이상한 기운과 온도가 느껴진다. 심지어 밥그릇에 밥만 퍼도 밥의 모양새가 무척 이상하더라는 설이 전해진다. 요리뿐 아니라 사실 가사 업무 관련해 나는 총체적 무능력자다. 학생 때도 실과 과목을 제일 못했다. 교대 시절 바느질 실기 시험이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지났지만 나와 남학생 두 명만 마무리를 못하고 강의실에 끙끙대며 앉아 있었다. 그때 교수님이 딱 집어 내게만 말했었다. “넌 여학생이 왜...” 기분이 몹시 언짢았는데 그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꾸미고 오리고 붙이는 것에 원체 재능이 없다 보니 교생 실습 시기부터 암담해질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남학우한테는 으레 그러려니 하며 웃어줬지만 내가 만든 것들에는 황당하다는 무언의 반응을 쏟아내곤 했다. 손재주가 없어 교직 초년기까지 발을 동동 구를 때가 많았고 초등이 아니라 중등으로 갔어야 했다며 후회하기도 했다. 지금은 모든 걸 내려놨다. 교실은 교사의 기예를 뽐내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과 삶의 공유 공간이란 철학이 생겼기 때문이다. 라면 당연히 거짓말이고 노조전임 후 복직인 데다 학교까지 옮기다 보니 정말이지 준비물이 단 하나도 없다으악!!! 이미 모든 것들이 세팅된 옆 교실, 페친들이 찍어 올리는 아기자기한 교실을 볼 때 잠시 흠칫하기도 한다. 그저 마음을 가다듬고 일단은 열심히 버리고 쓸고 닦아냈다. 뒷게시판을 위해서는 한 번 제작하면 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현수막 하나만 주문해 뒀다. 현수막 제목은 망설임 없이 이렇게 정했다. "모험은 시작됐어"


시민교육 관련해 근심에 가까운 관심이 깊어졌다. 사회의 여러 난맥상을 시민교육 하나로 해결할 순 없겠지만 어찌 됐든 학교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시민교육이다. 민주주의를 어디까지 실험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해 공동체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도전해보고 싶다. 대전지부에서 열었던 열광(열린 광장)은 우리 교실에서도 펼쳐질거다. 돌고 돌아 결국 드는 생각은, 교육은 살아가고 살아내는 과정이란 거다. 내일 어떤 일이 펼쳐질지 어떤 얼굴들이 교실에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차분한 저녁이다. 인생 별 거 없다. 그저 살아가자.

487418938_1933901363809237_1601265737462267066_n.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란시대의 안전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