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9.
바빴지만 여유로운 한 주였다. 무척 오랜만에 담임을 맡았고, 학교를 옮겼으며, 대전에서 손꼽히는 소규모 학교라 1인당 업무량도 많고, 지난 2년 학교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적응이 어려울 것 같아 걱정했었다. 하지만 노조전임 휴직이었기 때문인지 업무가 크게 동떨어진 것도 아니고 내 기준에서 업무 강도는 오히려 약해진 느낌이다. 물론 제시간에 퇴근은 못하고 손발은 바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여유롭다. 지부장 일을 할 땐 손발은 바쁘지 않지만 머리가 매사 복잡했었다. 정해진 절차나 매뉴얼 따위가 없는 일이라, 안갯속을 헤매며 고민하고 의미와 합의점을 찾고 미래를 전망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지부장 업무와 담임이란 두 가지 상황을 번갈아 경험해 볼 수 있는 게 나로선 흥미롭다.
학교를 옮긴 덕에 당연히 버퍼링이 있다. 학교 문화나 내규도 모르고, 하다 못해 기물이 어디에 있는지, 이 학교는 품의 금액에 따라 결재라인은 어디까지 설정하는지 등 자잘한 것들을 확인해야 한다. 업무 실수도 발생했다. 단순한 착오였는데 실수를 인지한 즉시 떠오른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년 간 내 뇌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전쟁 상태와 유사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빈틈을 보여선 안 되는 잠재적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단 느낌이 자주 들었다. 우리 전임들에게 내가 자주 했던 말 중 하나가 '책 잡힐 일을 만들지 말자'라는 것이었다. '단단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피도 눈물도 없다'라는 말도 두 번 들었다. 반대로 나는 조직 내 어떤 판단과 언행들이 참으로 한가하고 사사롭다고 느꼈다. 고백하자면 그 사사로움이 내 업무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었다.
윤석열의 석방 소식에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있는 와중에 나의 화두는 학생들의 사물함 정리 습관이다. 준비물 준비에 무관심한 학생들이 있다. 또 한 아이의 사물함은 교과서부터 줄넘기까지 모든 물건이 뒤죽박죽 놓여 있었다. 우선 제목이 보이도록 교과서부터 다시 꽂아놓으라고 했더니 "저는 원래 이런 걸 좋아해요. 색깔만 보고도 무슨 책인지 안단 말이에요."라고 주장했다. "책을 금방 찾을 수 있도록 제목이 보이도록 다시 꽂으세요." "저는 이게 좋아요" "제목이 보이도록 다시 꽂으세요." 결국 학생은 그 자리에서 책 정리를 했지만 다음 날엔 제자리였다. 쉽지 않을 여정이 예상되지만 난관이 없으면 모험이 아닌 법. 다시 시작해 보자. 렛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