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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

초야와 강호

2025. 4. 13.

by 김현희

만기 내신서를 쓸 때 신경 쓴 건 오직 통근 거리뿐이었다. 마침 이사 준비 중이었고,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지도 펼쳐놓고 가까운 순서대로 이동 희망 신청을 했다. 우리 학교가 9학급 소규모 학교인 것도 발령받고 나서야 알았다.


학교에 대한 교사들 간의 정보 공유 과정에서 주로 나누는 주제는 학생, 학부모, 관리자, 학교 규모에 따른 업무량 등이다.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를 텐데 내 경우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던 건 관리자 변수였다. 막상 학교에 와보니 실제로 민주적인 분들이라 아무 문제가 없는데, 최근 엉뚱하게도 장학사와 언쟁을 벌였다. 학교에서 신청하지 않은 사업을 ‘협조’의 이름으로 재차 요구했기 때문이다.


‘공문과 구두로 분명 의사 표시를 했는데 학교에게 자꾸 이러는 건 강요다’, ‘어디까지나 협조 요청이다’, ‘얼마나 더 거절해야 우리 학교 입장을 전달할 수 있나’, ‘교감선생님에게 충분히 말씀드렸고 결국 승낙하셨다, 전달 못 받았나’, ‘일은 관리자가 아니라 일선 교사가 한다’ 짧은 통화 끝에 결국 의사는 관철됐지만 아직 멀었다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사실 내 입장에서 그 업무 자체가 크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장학사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교육청에게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것도 안다. 다만 지원청이란 명칭이 무색하게 학교를 말단 기관 취급하는 고질적 관점, 계획은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세우고 실행은 학교로 던지는 일처리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협조’해 줄 생각도 물론 없다.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양상은 여전하고 내 선에서 막을 수 있는 게 있다면 최대한 막을 거다.


아이들과는 매일 지지고 볶으며 생활하고 있다. 학교에서 가장 인지도가 있는 학년 학생들이고 종종 깜짝 놀랄 정도로 거친 언행을 보이며 기초학력 문제도 심각하다. 나도 ‘천사들의 합창‘의 히메나 선생님 같은 성정은 아니라서 '도저히 이 꼴은 두고 볼 수 없드아!'며 긴급 조치를 실행하고, 아이들과 회의를 연 것도 벌써 수차례다. 이렇게만 들으면 숭고한 참교육의 함성처럼 들리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래가 끓으면 교실에서 크악크악 거리지 말고 화장실에 가서 뱉어야 한다', '몽정과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하는 건 좋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등 하드코어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적나라한 언어들, 폭풍 잔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낸다. 그래도 교실에서 자주 폭소가 터지고, 내 마음 한 켠은 비현실적일만큼 평온하다.


'언제까지 초야에 묻혀 지낼 거냐', '움직일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묻는 분들도 있다. '거참 무슨 말씀이세요, 학교야말로 공교육의 최전선 아닙니까. 저는 칩거 중인게 아니라 현장에서 치열한 교육활동을 벌이고 있답니다' 라고 말하는 게 물론 정답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학교 생활이 훨씬 편하다는 걸 부인할 수 없어서 쉽게 답을 못한다. 학교로 복귀하기 싫어하는 분들도 많은 게 나로선 놀랍고도 씁쓸하다. 내게 초야와 강호란 어디인지 더 고민해볼 문제지만, 어찌됐든 행위와 광장없이 살 수는 없는 인간이니 채비가 되면 운동화 끈 다시 묶지 않겠어요, 라고 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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