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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

더 사랑하자

2025. 5. 10.

by 김현희

3월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의 언행이 거칠고 폭력적이라 나의 근심이 깊었다. 욕설과 비속어 사용 양상이 심각했고 대화를 늘 싸우듯이 했다. 잔소리와 설교 정도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에 와서 밥을 먹다가도 젓가락을 입에 물고 고민에 빠질 정도였다.


3월 말, 굳은 결심을 하고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앞으로 친구들끼리도 존댓말을 씁시다, 2시 반 하교 전까지!'. 반발이 거셌다. 당위와 명분을 설명하고 개인의 일화도 소개하며 설득했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페북분회(조합원 모임) 운영 당시 '반목데이'(반말하는 목요일)를 지정할 땐 나름 투표를 거쳤었다. 이번엔 일방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내 선언으로 시작됐다. 아직은 5학년인지라 꿍얼대면서도 선생님 말을 일단 따라줬지만 일부는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초반엔 피곤하고 시끄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건 반말이냐 아니냐?', '얘가 반말해 놓고 안 했다고 우긴다!' 등으로 싸움이 벌어져 안그래도 언쟁이 잦은 아이들이 더 큰 소란을 일으키곤 했다. 3회 연속 반말, 욕설 사용으로 묵언수행 벌칙 수행자가 나왔을 때 소수의 반란 비스름한 게 벌어지기도 했다. 솔직히 그때 나는 민주주의와 정치력이고 뭐고, 말과 기선으로 제압했다. 자랑스럽진 않지만 지금 돌이켜봐도...그럴 수밖에 없었다.


5월인 지금은 확연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본인들끼리 알아서 "야!" 대신 "님!"이라고 부른다. 거칠고 격한 표현이나 대화 양상도 차분해졌다. 이제는 너무 습관이 되어 버려서, 태권도장이나 편의점에서 친구를 만나도 무의식 중에 존댓말을 쓰고 그 결에 가게 직원이나 사범님이 웃더라는 말을 나누는 모습들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적어도 ‘초반에 비해’ 우리 반이 평등하고 평화로워졌다는 자기 평가가 지배적이다.


존댓말 정책과 함께 늘 신신당부했던 것이 하나 더 있다.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망설이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입에 모터 달린 듯 수시로 하자는 것이었다. 내 개인적인 언어습관이자 신념이기도 하다. 마음이 말을 만들지만 말이 마음을 형성하기도 한다. 작은 언어습관이 내 삶과 타인과의 관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자주 설명하고 나 스스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존댓말 쓰기와 '입에 모터 달린 듯 고맙다, 미안하다 말하기’ 규칙이 어디에든 적용 가능한 보편타당한 학급 규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조치였다.


남은 과제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일단 성실성 문제인데, 우리 아이들의 경우 공부하는 루틴이 형성된 아이가 많지 않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고 특히 수학 학습 능력이 불안한 상태다. 그래서 내가 자주 수학 숙제를 내는데 집에서 15-20분가량 공부하는 것도 버거워한다. (애들은 놀면서 커야지요, 같은 소리 정중히 사양합니다.) 묘책은 없다.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한 발 한 발 꿈틀꿈틀 내딛는 중이다.


아이들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아이들 실태를 미리 알았거나, 혹은 학급운영에 훨씬 더 숙련되어 있었다면 진작 나아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복직하며 학교를 옮긴 터라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다는 건 얼마간 핑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올해 겪고 있는 시행착오들이 내년에 맡을 아이들에겐 양분으로 작용할 거다. 그래서 내 앞의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미안한만큼 ‘더 사랑하자’고 다짐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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