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5.
나는 무색무취로 평가받는 도시에서 태어나 그중에서도 유독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다. 어릴 때 어른들이 모여 정치나 역사 관련 대화를 나누는 걸 본 적도 없다. 우리 집안엔 비장한 운동권도 빨갱이 척결론자도 없었다. 누구도 그런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아니 웬만해선 아무도 목소리 자체를 높이지 않는, 뿌리까지 은은한 충청도 집안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 부모님의 삶은 아렌트식으로 말하자면 전형적인 '가족인간'에 가까웠다. 관심의 대부분을 먹고사는 일에 쏟았고 공적 사안에 무관심하고(혹은 입에 올리지 않고), 가족을 곤궁에 빠뜨릴 만한 어떤 모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50년대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생존만도 버거웠던 부모님에게 ‘공적 사안에 무심했고, 교양이 부족했으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과정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손가락질할 생각은 (적어도 자식으로선) 추호도 없다. 아렌트도 비판하기 위해 만든 개념은 당연히 아니었을 거다.
신념 혹은 편의였겠지만, 아빠는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를 꽤 신성시했다. 나는 '정치중립은 허상이다'라는 구호에 익숙하고 진심으로 동의하지만, 아빠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 배울 지점을 봤었고, 공무원 정치기본권 개념을 진영논리 구축을 위해 이현령비현령 이용해대는 일군의 흐름에 대해서도 상당히 경계하는 입장이다.
어린 시절 내가 뭣도 모르고 내뱉었던 말들에 대해(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정치적인 말을 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갔던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 많은데선 말을 조심해'.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대중매체가 발달하면 개인이 노출되는 일이 많아질 거고 그러면 현희는 독특한 매력으로 정치인이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을 때도 엄마는 펄펄 뛰었다. '안돼! 절대 정치판 같은데 발을 들이면 안 된다!'
학생 시절에도 소위 의식화된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다. 광주 출신인 친구 한 명은 고등학교 시절 학급문고에 항상 '말' 잡지가 꽂혀 있어 자연스럽게 읽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내 경우는 '말'이라는 잡지가 세상에 있다는 것 자체를 20대 초반에 알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소설, 영화 잡지, 음악 잡지만 탐독하며 지냈다.
요약하자면 나는 '정치'에 관해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떤 사상 내지 에너지도 주입받은 바가 없다. 20대 초반에는 아쉽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환경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현실 정치에 관심갖기 시작한 건 대학에 입학한 만19세 때부터다. 온라인 문화가 활성화됐고 우연히 딴지일보를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김어준도 당시로선 참신한 인물이었다). 인생 첫 선거에서 노무현을 지지했고 그가 당선됐던 날 몹시 기뻤지만 나는 즉시 그를 버렸다. 냉철한 계산과 판단이었다기보다는, 스무 살 젊은이에겐 더 크고, 더 빠른 변혁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라크 파병, 김선일 참수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완전히 노무현에게 등을 돌린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내 개인의 역사에서 노무현은 '젊은이의 짓밟힌 이상과 동경'이라 말했었는데 '젊은이'는 노무현이 아니라, 나와 같은 꿈을 꾸던 젊은이들을 말한다. "이제 됐어! 공정과 상식은 민주화 세력에게 맡기고 우리는 진보와 평등을 향해 나아가자!" 그러면 될 줄 알았던, 장밋빛 미래를 어쩌면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순수했던 젊은이.
음, 요즘은 소셜미디어를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어쩌다 페북에 들어오는데 들어올때마다 데일 것처럼 뜨거운 정치적 근심과 우려와 날 선 논쟁이 벌어지는 모습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심드렁할까, 혹시 나의 정치적 열망과 에너지는 영영 사라져 버린건가, 스스로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지난 2년 난무하는 구호전에 질렸던 탓도 있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한껏 굵어진 머리로 민주노동당의 흥망, 제3지대를 향한 열망의 사그라짐을 지켜봤다. 미친 대통령 한 명 끌어낸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거란 체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사력을 다해 끌어내야 했던 피곤의 반복도 있다. 이제 나도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으니 쉽사리 기대나 흥분이 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40대 중반씩이나 돼서 쉽게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도 책임있는 어른의 도리는 아니라는 상념 속을 헤매며, 멍하니 앉아 잡글을 끄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