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눈을 질끈 감고 살아가야 하나

2025. 4. 20.

by 김현희

지난 2년 학교를 떠나 본격 활동가 생활을 하면서 운동권 집단에 대한 신뢰가 많은 부분 허물어졌다. 물론 2년 내내 많이 배우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으며 가끔 '저력' 비스름한 걸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백하자면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는 듯 고통스러웠다. 어두운 장기 전망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건 쉽지 않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나?라는 회의에 시달렸다.


일부가 평온하고 흔들림이 없어 보이는 이유를 깨닫는데 나름 시간이 걸렸다. 전교조의 혹은 노조의 관행과 문법 혹은 지시대로 실행하거나, 조직 체계와 동지에 대한 믿음이 강하거나(혹은 인맥이 굳건하거나), 전교조가 '옳았고 지금도 옳다'라는 확신이 있는 분들은 이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거나 덜 느끼는 것 같았다. 물론 개인적인 관찰 끝에 내린 결론이라 확실한 답은 아니다.


정치권에 '스타'가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전문 정치인이 필요한 것처럼, 운동판에도 전문성을 갖춘 활동가들이 필요하다. 평생을 한 곳에서 일하는 상근자들과 달리 전임들은 2년마다 바뀌는 현장교사들이다. 누구라도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일을 익힐만하면 현장 복귀다. 2년이란 임기 자체가 짧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운동 자체가 생명력을 잃어가다 보니 인력 충원의 선순환, 활동가풀 양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직의 중책조차 그때그때 땜질하는 방식으로 메꿔지는 중이다.


구호만 외치는 노동 운동 방식에 환멸이 일었다. 서명, 피케팅, 기자회견, 집회 그다음은? 물론 구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구호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이 무엇인지, 대중적 확산과 조직화는 어찌할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실천과 실력이 부족하다. 내가 볼 때, 운동 세력이 실력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옳다!'라는 확신이 매사 지나치기 때문이다. 정당성만 있고 디테일과 정치력이 없는데 경쟁 노조까지 생겼으니 미미했던 교섭력은 더욱 약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정의롭고자 노력하는 집단이란 믿음까지 부서진 건 최근 대의원대회에서 불거진 문제 사태 때문이다. 나는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조합원들이 의견을 물으실 때마다 "어찌됐든, 내부에서 먼저 문제제기를 하면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겠나. 답답해도 내부에서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라고 말씀드렸었다. 하지만 듣자하니, 조직 내 서명 운동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어떤 대의원은 대의원대회 중간에 욕설과 다수의 야유를 맞았다고 한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구체적인 제지와 사과도 없었다고. 최소한의 내부 자정 능력도 잃은 집단을 향한 내 기대가 지나쳤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합원들이 원했던 건 구설에 오른 일부 활동가들을 악마시하며 '그들을 일거에 몰아내자', '숙소 규정에 문제가 있으니 모든 것을 다 뒤엎자'라는 게 아니었다. 작년부터 불거진 문제였던 만큼 논의할 시간은 충분했는데, 규정 논의 등에 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들에게만 노골적인 비난의 화살이 꽂혔다. 성역 없는 비판의식이 전교조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건 어리석은 착각이었나. 그 와중에 어떤 분들이 내게 '오직 너에 대한 의리 때문에 남아있다'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 울고 싶었다.


요즘 학교 생활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웃으며 "아주 뱃속 편하고 좋습니다으하하하하!"라고 외친다.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학교 행정실이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노동조합에서 민주주의도 배웠지만 동시에 말로만 듣던 패권주의의 바닥도 목도했다. 영원히 이 바닥을 떠나 버리고 싶은 욕망도 들끓는다. 하지만 나 따위가 좋든 싫든, 현재 자본과 국가에 조직적으로 맞설 마지노선이 민주노조 세력이란 걸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나는 내면에서 나를 괴롭히는 여러 질문에 아직 답을 못했다.


'너는 도망치고 싶은게 아닌가?', '믿음과 신뢰를 보여줬던 선생님들 낯을 어떻게 볼 것인가?', '대중이 아니면 누굴 믿을 것인가?', '대중과 함께 하지 않고 교육을 바꿀 수 있는가?', '너는 정녕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인가?'


휩쓸리듯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번뇌 속을 헤매겠구나 싶기도 하다. 아이고 그냥 산책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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