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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

시민교육의 가능성을 보다

2025. 5. 19.

by 김현희

https://news.eduhope.net/27024

2025년 들어 처음 열린 '광장'엔 다양한 근심이 서렸다. 비상계엄령과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어른거렸고, 양꼬치 골목에서 "중국으로 꺼져!"를 외치는 청년들을 봤을 때 찾아든 서늘한 경악이 가시지 않았다. 극우화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초등학생들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 "혐오 표현 통제가 필요하다"고 외치지만 차별금지법은 20년 가까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시민교육에 관한 고민은 일련의 충격적 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공교육의 목표는 엄연히 ‘민주시민양성’이지만 사회와 학교에서 이에 대한 합의와 이해는 여전히 제각각인 측면이 있다. 여전히 시민교육을 도덕, 윤리 등 특정 교과 혹은 계기 교육의 대상으로 여기고, 학교 민주주의는 자치 업무 담당자의 문서 작업 속에만 존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교육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활동은 원칙적으로 입시가 아닌 시민교육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수학, 과학 교과를 통해 기르는 참과 거짓 구분, 사실과 의견 구분 능력, 변인 통제 능력, 비판적인 사고능력 등은 물론 문학, 음악, 미술 등에서 기르는 서사적 상상력과 타인 이해 능력, 감수성 등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극우 정치 팽창은 세계적인 경향”


계엄 사태 이후 김누리 교수의 ‘한국 교육은 파시스트를 기른다’라는 분석과 발언이 유행처럼 번졌다. 난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우선 그가 겪은 6~70년대 한국 학교의 모습으로 현재를 진단하기 어렵고, 계엄을 막아낸 (파시스트가 아닌) 시민의 힘은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무엇보다 김 교수가 이상향처럼 그리는 독일 역시 교육과 민주주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물론 독일은 나치 과거를 반성하는 세계의 모델이다. 하지만 통일 이후 독일은 스킨헤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 반이민 극우파가 기승을 부리는 국가이기도 했다. 실제 지난 2월 독일 총선에서는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2위로 등극해 집권까지 노리는 실정이다.


차별, 배제, 반평등으로 요약되는 극우화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트럼프, 러시아 푸틴, 프랑스 르펜은 물론 스칸디나비아에서조차 복지국가 모델이 흔들리며 극우 정당이 세를 불리고 있다. 즉 한국 사회 전반은 물론 교실까지 파고든 극우화 경향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 교육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고 김 교수의 교육 현장 비판엔 새길 지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조건과 현실을 큰 흐름 속에 냉철하게 조망하려는 노력은 모든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다.


“자기 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시민”


지난 5월 14일 전교조 대전지부의 '열광(열린 광장)'을 찾은 방선재 (경기 송린초) 교사는 지난 몇 년간 공동체와 함께 직접 실천한 ‘학교 민주시민교육 현장 사례’를 밀도 있게 공유했다. 그는 민주시민교육을 ‘자기 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시민’, ‘생각 당하지 않고 생각하는 시민’을 기르는 과정으로 표현하며 ‘학급-학년-학교-마을’로 확장되어 간 안전교육과정 사례를 세세하게 나눴다.


그 속에서 나타난 아이들의 엉뚱발랄함, 교사 공동체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 지역 사회와의 협업 과정을 대전 조합원들은 웃고, 감탄하고, 조금은 걱정하며 (교사들의 엄청난 공력은 어디서 오는가, 혁신학교는 구경도 못 해 본 대전에서도 가능한 모델인가?) 함께했다.


방 교사는 끝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제도적 과제로 △관료주의와 행정중심 업무에서 벗어나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학교 재편 △학생 중심의 학교 문화와 교육활동 중심의 학교 운영체계로 전환을 들었다. 이 밖에도 학교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통합생활교육팀과 민원대응팀을 구성하고, 교사에게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줄 것, 학교 안과 밖의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참여자들은 이번 열광을 통해 "학교에서의 실천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방향성을 얻었다", "교사인 우리의 시민 역량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교사와 학생 모두 나의 생각을 갖고 표현하는 훈련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소회를 나눴다.


학교 상황은 여러모로 녹록지 않다. 세계적인 극우 정치의 팽창이 한국 사회와 교실에 직격탄을 퍼붓고 있지만, 시민성에 관한 관심이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조차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사회의 장래가 마냥 밝진 않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아렌트의 말마따나 “우리는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밝은 빛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런 밝은 빛은 이론이나 개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하면서 깜빡이는 약한 불빛에서 나올 수 있다.”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한나 아렌트)


전교조 대전지부의 열광은 불확실하게 깜빡이며 약하지만 빛나는 불빛 하나를 지킬 것이다. 6월의 열린 광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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