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8.
난 사실 선후배 관계란 걸 이해하지 못한다. 선후배로 명명하는 사람 자체가 없고, 누군가 내게 "저 대학 때 후배 누구예요", "나랑 동기구나!"라는 방식으로 다가오면 (최대한 티는 내지 않으려 하지만) 내면에 혼란과 피로의 소용돌이가 인다. 나로선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 한국에서 살았지만 지금도 적응을 못하는 문화다. 내가 영어를 못하던 시절에도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졌던 이유가 타고난 성품 때문이다. 나는 극도로 개방적이고 위아래가 없다. (?)
2023-24년 2년 간 동고동락했던 지부 전임들의 나이 차이는 꽤 컸지만 나이 서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우리의 대화하는 모습, 교류 장면을 봤다면 사무적이고 딱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존칭과 존댓말을 썼고 대화의 대부분은 일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웠다...가깝다는 말로는 사실 부족하다.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냈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눴다. 내 공적인 자아, 뇌의 일부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언쟁도 했다. 서로를 오해하는구나, 서로를 이해할 수 없구나, 싶어서 억울하거나 고독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태양이 뜨고 지구가 도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난겨울 있었던 작은 행사에서 누군가 내게 "전교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조합원이 누구냐"라는 즉석 질문을 했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콧물을 질질 흘리며 조 선생님, 신 선생님이라고 답했다. 사실 우리에겐 스펙터클, 몽글몽글, 아름다운 추억 같은 건 없다. 우리는 죽도록 일만 했다. 내 역할은 프런트맨이었고 그래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나 혼자 잘나 할 수 있는 일 따윈 하나도 없었다.
그 행사에서 울며불며(;;) 이런 말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전교조에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다. 끌어준 사람 없이 내 발로 알아서 가입했다. 지부장 되기 전에 밥 한번 얻어먹은 적도 없다. 하지만 지난 2년 이 사람이 없었으면 살아남지 못했다. 전교조에서 내게 지분 있는 사람은 오로지 이 사람 뿐이다." (이 말을 꼭 들었어야 할 당사자는 정작 밖에 나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여럿이 사석에서 만났을 때 조 선생님이 내게 장난으로 '언니'라고 불러보라고 했다. 부르고 싶었는데 죽어도 입이 안 떨어졌다. 언니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내가 가깝게 여기지 않는 건 아닌데 내 마음을 알아주실지는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자마자 언니 동생 형 누나가 되는지 신기하다.
내가 언니라고 부르지 못하는 언니들이 날 숙연하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뛰어난 역량과 헌신을 좀처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서다. 그들이 나를 열받게 하는 이유 역시 그들이 도무지 자신의 역량과 헌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서다. 나는 종종 길길이 날뛰며 외쳤다. "왜 항상 누군가를 서포트하려고만 하세요! 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세요! 여성들이 안 그러면 좋겠어요. 저 사람들 좀 보세요. 뭣도 없으면서 자리 욕심만 있는 사람들이 리더 하는 게 좋으세요? 왜 누구를 도와주고 키우려고만 하시냐고요." 한편으론 나 스스로 미안해서 했던 말이다.
나는 타고나길 위아래가 없는지라, 마음속 깊이 존경하면서도 눈에 띄는 대접은 못 해드렸다(바랄 사람도 아니다). 또 성격인지 팔자인지, 이 나이 먹도록 사랑과 돌봄을 받기만 했다. 그래서 항상 어딘가 빚진 기분으로 살아간다.
요즘은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대선 이야기뿐이고, 가장 망가진 형태의 인간이 말의 칼로 세상을 난도질하는 모습을 본다. 지친다. 내 기준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의 인간들, 좀처럼 밖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 인간들,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보듬는, 내가 언니라고 부르지 못하는 언니들이 오늘따라 그립다.
2025.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