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여름이다

2025. 6. 6.

by 김현희

지난주 우리 반 아이들 문제로 힘들었다. 마치 두더지 게임 같았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튀어나오고, 한 아이를 가라앉히면 다른 아이가 돌발 행동을 하는 식이었다. 아이들이 한바탕 하교하고 난 뒤 어떤 자리의 풍경에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물론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만 스스로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선생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요즘은 대개 자식을 향한 학부모의 지나친 관심을 문제 삼는데, 우리 학교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일부 보호자의 무관심에 소스라칠 때가 있다. 진단평가 결과 우리 반에는 전교 부진 판정 학생의 절반이 몰려 있다. 우리 반 학생들의 작년 담임 선생님이 나를 처음 만났던 날, 안절부절못하며 죄송하다고 말했던 모습이 종종 떠오른다. 물론 나는 그 선생님의 책임이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사가 마음을 굳게 먹고 최선만 다하면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풀리는 동화책 속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엊그제 생존수영을 갔다가 몇몇 동료들과 둘러앉아 잠시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소규모 학교라 교사들 업무가 많아 모일 시간이 거의 없어 학기 시작 후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요 며칠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으며 '교사로서 나 자신에게 다소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들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치셨다. 전입 학교 적응은 누구라도 힘들지만 우리 학교는 그중에서도 최상의 난도라는 거다. 첫 해 울면서 학교를 다니거나 위험한 충동을 느낀 분도 있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잠깐의 수다를 마치고 다시 수영장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물 위에 떠있는 훌라후프로 점프해 들어가는 연습 중이길래 영상 촬영을 했다. 생존수영 전날 너무 설레서 잠도 설쳤다고 했던 아이들이었다. 현장체험이고 뭐고 다 취소된 마당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교실로 돌아와 수영장에서 찍은 영상을 플레이했더니 박수를 치며 깔깔 웃고 난리였다.


"나도 여러분들과 같이 수영하면 좋았을 텐데! 나도 훌라후프로 점프해 들어가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진심으로 짠한 표정을 지으며 위로했다.


"선생님도 다음에 수영복 가져와요!"

"선생님도 훌라후프 가지고 선생님 친구들이랑 수영장에 가요!"

(ㅎㅎ.......)


'과연 이 아이들이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까? 신규교사가 이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디서 비롯된 감각인지 모르겠지만, 올해 내가 이 아이들을 맡은 건 필연이자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덕분에 겸허해진다. 이상한 도전의식도 생긴다. 선생 따위 아무 상관없는 듯 굴던 아이들이, 가끔 내 말과 행동에 진심으로 감화되는 모습, 혹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화가 나다가도 내 마음이 도리어 짠해진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날 때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이 내 몸을 휘감는다.


여름이 왔다. 보나 마나 쉽지 않은 여름이 될 테지만, 여전히 나는 자주 화가 날테고, 여전히 아이들은 시끌시끌 야단법석이겠지만, 이 미워할 수 없는 악동들과 잊지 못할 여름을 만들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