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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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4월 4일 오전 11시. 우리 교실은 봄을 표현하는 미술 활동에 이어 수학 수업이 한창이었다.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 개념 설명을 반복하고 연습 문제를 거듭 풀어도 아이들은 여전히 머리를 싸매며 끙끙댔다. 수준 차이가 심한 아이들 속에서 내 마음도 분주했다.
사실 아침 출근길엔 탄핵 선고 생중계 시청을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미술로 난장판이 된 교실을 청소하고 최소공배수와 씨름한 후 아이들이 영어실로 가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미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정치인과 각종 단체로부터 날아온 파면 선고 축하 문자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학생들 하교 후 공문 처리에 과제물 점검을 마치니 곧장 퇴근 시간이었다.
중대한 역사적 순간을 가볍게 흘려보낸 것 같아 월요일 아침엔 진지하게 운을 뗐다. 대통령 파면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아이들은 난데없이 “석열아 왜 그랬니!”, “돼지 파면!”을 외쳤다. 법치주의, 헌법 위배 같은 비장한 주제는 꺼내지도 못했다. “행위에 대해 비판해야지 외모 비하를 해서야 되겠나?”,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방식의 호명이 적절한가?”, “선생님 그런데 오늘 창체 시간에 뭐해요?”, “날씨가 따뜻하니 산호수를 바깥 화단에 옮겨 심어요!” 대화는 결국 안드로메다로 빠지고 말았다.
일상의 바퀴를 거스르지 못할 만큼 내 심정이 담담했던 것도 사실이다. 벌써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다. 탄핵의 당위와 무관하게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치렀고 향후 양상도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민주주의의 승리를 외쳤지만 이제 겨우 시작이다. 탄핵 선고 중계 시청을 권고하는 공문 발송 필요성을 주장하는 일각의 주장을 보며 뿌리부터 민주적인 시민교육에 대한 지향이 여전히 제각각이란 생각을 했다.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지난 4개월을 이겨냈다. 분노, 긴장, 불안과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올랐고 세상은 지나치게 정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한탄이 매일 터져 나왔다. 탄핵으로 대개혁을 이루자는 구호는 난무하는데 ‘그 개혁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경제적 불평등과 교육 불평등은 나날이 심각해졌다. 사회적 결속력은 약해지고, 정치적 갈등은 자멸로 치닫고 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사고는 권력자가 쳤고 수습은 언제나처럼 시민들이 해냈다. 구원자는 정치인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아니다. 학교로 회사로 공장으로 논밭으로 나가 일한 사람들이 지킨 일상 덕분에 사회는 최악의 붕괴를 면했다. 휘청대는 정국에서 아이들은 머리를 싸매며 최소공배수를 구하고 열일곱 그루의 산호수에 물을 주며 무사히 자라나 줬다.
염치가 있다면 정치권은 이제 민생을 살피고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교육은 백 년을 바라보자. 한국 청소년의 자살률은 세계 상위권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입시 경쟁,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규제 등에 아무 관심이 없다. 기존 인성교육과 차이도 없는 ‘한국형 사회정서교육’ 따위를 학교에 밀어 넣고 늘 그랬듯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학교 업무의 화수분 역할만 수행 중이다.
불의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고 저절로 교육개혁이 이뤄질 리 없다. 변화는 구호가 아니라 현장에 대한 이해, 대중과 함께하는 운동과 실력이 만든다. 이제 제발 소를 키우자. 불탄 산에 나무를 심자.
202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