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6. 13.
아침부터 학부모 관련 사안으로 정신이 없었다. 요즘 내 글이 늘 그렇듯, 온라인 공간에 자세한 사연을 쓸 수는 없다. 다만, 잠깐만 삐끗했어도 뉴스에서나 보던 막장 드라마가 내 눈앞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상황은 원만히 마무리되었지만 솟구치던 분노가 가라앉고 나니 먹먹함이 가시지 않는다.
2025년 한국의 교실 풍경 속에서 나는 이례적으로 꼬장꼬장한 교사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원칙적이되 유연한 사람이라 말해왔지만 올해 담임으로 복귀한 나는 흔치 않은 집요함을 고수하고 있다. 내 개인의 성격과 의지 탓이라기보단, 담임 업무가 오랜만인 영향이 크다. 지난 몇 년 사이 학교는 확연히 달라졌다. 요즘은 교사도 직업인일 뿐이라며 사명감을 요구하는 건 무리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교사라는 직업은 학생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 없이는 깊이 있고 창의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믿는다. 2025년 한국의 교실에선 그 믿음에서부터 삑사리가 난다.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울적해하면 짜장면과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족이 있다. 웬만한 궂은일은 금세 잊거나 승화시켜 버리는 히드라급 회복력도 있다. 하지만 오늘 학교에서 벌어진 드라마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먹먹하다. 자신의 불안과 죄의식, 사회를 향한 불신을 학교와 교사에게 투사하며 아이를 벼랑 끝으로 모는 어른들의 모습이. 내용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민원 하나로 현장이 휘청이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라는 아이들이 이제 매사 교사와 거래하고 흥정하려 드는 모습이. 내가 모르는 사이 다쳐왔고, 지금도 다치고 있는 수많은 교사들, “열심히 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들으니 적당히 해”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는 동료들이 먹먹하다. 그들에게도 누군가 짜장면과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위로해 주었을지 궁금하다.
이 모든 사태의 구조적이고 연쇄적인 영향은 결국 우리 아이들과 미래로 고스란히 흘러들어 갈 거다. 막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결말이 쓰인 대본을 손에 들고 무대 앞에 서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