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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

다 같은 자유가 아니다

2025. 06. 17.

by 김현희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75


우리 반 학생 일부는 밤새 유튜브를 보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해서' 욕과 비속어를 남발한다. 돌발적인 개인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배려하지 '못해' 교실 문을 시도 때도 없이 열어젖힌다. 내 경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아이가 규칙을 지킬 힘이 부족하다고 간주하고 생활 지도를 한다.



규칙을 지킬 수 있지만 고의로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자기 조절 능력이 부족해 규칙을 못 지키는 게 아니라, 해당 규칙이 개인과 공동체에 해롭다는 판단하에 합리적인 불복을 선택하는 경우다. 이 경우 행위자는 규칙의 절차적, 실용적, 윤리적 정당성과 영향력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야구라는 스포츠의 규칙을 변형하려면 일단 야구의 룰을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어른들도 많은 경우 이 차이를 모른다. 상식적이고 선량한 보호자나 시민들조차 '자기 조절 능력의 부족'과 '합리적 불복' 사이에 흐르는 간극을 간과한다. 아이의 특정 발언과 행동을 자유로운 영혼의 귀엽고 애틋한 반란쯤으로 여기며 은은한 자부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과거 학교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었단 사실에서 출발하는 복합적 감정이 이러한 반응을 이끄는 듯하다. 그럼에도 많은 구성원이 자기 합리화, 합리적인 거부, 시민불복종 사이의 차이를 피상적으로 인식한다는 점은 문제이다. 심지어 서부지법에 난입했던 폭도들마저 국민 저항권을 외쳤다.



자유의 양상은 다양하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옹호하는 자유는 소극적 자유다. 이는 개인이 타인이나 국가의 간섭 없이 살 권리를 뜻한다. 영국의 '마그나카르타'가 주장하는 '관리의 자의적 약탈'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개인이 자신의 선택대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람은 단순히 방해받지 않을 권리만으로는 자유롭지 않다. 진정한 자유 실현을 위해서는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투표권이 있더라도 정보 접근권과 이해력이라는 힘이 없다면 정치적 자유는 헛된 권리에 그친다. 창업의 자유는 자본이나 네트워크 등의 힘과 자원을 배경으로 실현할 수 있다.



현재 학교의 난맥상을 논할 때, 본인 아이의 권리와 자유만 외치는 무개념 보호자를 주원인으로 지목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못지않은 원인이 제도 설계자들의 무지와 방임이다. 사회 리더와 정책 설계자들마저 자유의 실제 작동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학교의 곤경은 악성 민원인만 척결하고 민원 대응 시스템만 도입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자유로운 과목 선택권 확대를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학생이 과목과 진로 선택의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려면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자기 이해 능력, 진로 결정 역량, 정보 수집 능력과 같은 능력이 필수적이다. 교육 인프라, 교사 수급, 가정 지원 등의 자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입시 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허울뿐인 선택권 확대는 입시에 유리한 과목의 수강 쏠림 현상, 학생 개인의 부담과 교육불평등만 가중시켰다. 자유주의적 교육관에 기반해 어설프게 추진된 제도가 결국 학생의 실질적 자유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결과를 남긴 것이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허용한다고 해서 아이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학생의 선택권만 강화한다고 자유롭고 평등한 교육체제가 저절로 구축되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의 실현을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이해와 합의, 폭넓은 실천력이 필요하다. 학생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않고, 사회·경제적 조건과 '자원'을 마련해주지 않고, 학생에게 선택권만 떠넘기는 행위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어른의 기만에 불과하다. 절차만 갖췄다고 민주주의가 아니다. 선택권 확대가 자유의 확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유에도 격이 있다. 다 같은 자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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