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15년

2025. 6. 27.

by 김현희

15년 전 어제 결혼했다. 초기엔 전쟁 같았다. 나는 두 번쯤 가출했고 여러 번 그의 속을 썩였다. 좋게 말하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나의 지랄발광이었다. 쉽게 얻은 평화는 아니지만 내게 밴 안정감의 상당 부분은 이 사람 덕분이다. 그는 내가 만나본 누구보다 가부장적이지 않은 남성이다. 아니, 내가 만나본 어떤 여성보다도 언행일치 면에서 훨씬 더 반(反) 가부장적이다. 특별한 교육 덕분이 아니라 태생이 구김 없이 공명정대하다. 이 사람의 약점은 나 밖에 없다. 10년 전이었나. 대전쟁의 와중에 그가 ”어쩔 수 없다. 나는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램된 인간인가 보다.“ 라며 고백도 항복도 아닌 자포자기 선언을 했을 때, 나는 내 끝없는 이기심이 뼛속까지 부끄러워졌다. 유치한 나의 권력 투쟁이 끝났다.


15년째 어른들 말 따위는 모조리 즈려밟고 멋대로 살고 있다. 우리가 우리 삶의 방식을 결정했을 때, 몇몇 어른들은 길길이 날뛰었다. ’허무해질 거야‘, ’외로워질 거야‘, ’자식이야말로 너희 둘을 잇는 끈이 될 것인데‘라며.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개인으로서도 관계 안에서도 훨씬 단단해졌다. 둘이 합쳐 나이 여든을 넘긴 우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린다. ’역시 옛 어른 말씀 중엔 맞는 게 별로 없어‘.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건 아니다. 남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능력이나 의지도 없다. 다만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을 주변머리가 강해졌고, 인생을 레벨업 방식의 게임처럼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15년 전, 카메라 울렁증에 렌즈만 보면 메롱을 해대던 시절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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