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엄마

7월 31일 마드리드 시내 공원에서.

by 김현희

엄마에게 여행 소식을 알리지도 않고 훌쩍 떠나왔다. 엄마는 매사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외국에만 나가면 시간이 그리도 느리게 흐른다 하니 최대한 늦게 알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엄마와의 대화가 쉽지 않다. 귀가 무척 안 좋아졌는데 보청기 끼는 건 싫어하고, 나 역시 한 말을 하고 또 하는 걸 극도로 피곤해하는-인내심 부족한 성격이다. 나이 들수록 서로의 관심사도 점점 멀어져 간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성장은 같은 자리에서 멈춘 듯하고, 내 활동과 사고의 반경은 계속 확장되어 가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왜 자신의 삶을 작은 공간과 협소한 네트워크 안으로만 욱여넣는지 답답할 때가 많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관점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얼마 전 엄마가 손목에 찬 팔찌를 보여주며 예쁘지 않냐고 물었다. 안타까울 정도로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대충 그렇다고 대답했다. 값비싸진 않지만 흔치 않은 모양이라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고 친한 아주머니가 유독 탐을 내며 달라는 듯이 말했지만 주지 않았다, 라는 말을 건성건성 흘려듣고 있는데 엄마가 문득 물었다. ‘너 줄까?‘라고. 익숙한 감동과 황당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신나게 자랑하던 아끼는 팔찌를 내게만큼은 선뜻 주겠다는 것도, 40여 년을 지켜보고도 여전히 내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도 한결같이 우리 엄마다웠다.


더 진취적인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하고,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자식들과 손주 생각만 하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그래서 내게는 경미한 짜증과 감동, 감사함,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엄마가 갑자기 누구보다 보고 싶었다.


7월 31일 마드리드 시내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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