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4.
2025. 8. 4.
며칠 전 나는 엄마가 내 취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나도 타인의 취향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내 취향도 어떤 면에서 두서없이 뒤죽박죽이다. 큰 맥락에서 볼 때 단순하고 절제된 걸 주로 선호한다는 정도다. 화려함을 무조건 배척하는 건 아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던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입구에서부터 다소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찬양하고 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겠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에서 보면, 화려한 색채와 과잉된 장식이 디즈니랜드 서커스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쏟아내는 장엄한 빛은 물론 아름다웠지만 성스럽다기보다 (내 기준에서) 요란했으며, 한결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수많은 관광객들도 내가 느낀 산만함에 큰 몫을 담당했다. 가우디가 설계한 집 ‘카사 바트요’에서 나는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 신앙과 자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려는 야심은 느껴졌지만 내가 간직하고 싶은 무언가는 찾을 수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프로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내 경우 프로도 보다는 비교적 소박한 규모의 레이나 소피아가 편안했고 작품들도 내 취향에 가까웠다. 프로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즈와 고야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레이나 소피아에는 무려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가 전시되어 있으므로 규모나 작품의 수로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니겠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거치며 나는 가우디가 만든 장엄한 건축물들 보다는, 이탈리아의 차분하고 비례감 있는 고전 건축물, 미국에서 탐험했던 실용적인 건축물들이 내 취향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뭐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 취향이란게 썩 고상하고 단정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뜬금없는 고백인데, 사실 나는 ‘이혼숙려캠프‘라는 몹쓸(;;) 관찰 예능의 시청자이기도 하다. 결혼이란 제도가 어떻게 인간을 옭아매고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인류학적 보고서가 아니냐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관찰 리얼리티 쇼가 주는 싸구려 쾌감의 영향이 크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부모와의 금전 문제로 고통받던 출연자 중 한 사람이 실제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나로선 장르가 예능에서 스너프 필름으로 바뀐 듯해 어느 순간부터 윤리적인 이유로 시청을 꺼리게 됐지만, 어쨌든 ‘이혼숙려캠프’라는 티비 프로그램이 내 길티 플레저 중 하나였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여행 중 취향에 관한 이런저런 잡생각들 속을 서성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취향 역시 뒤죽박죽에 딱히 특별할 게 없으며, 나 역시 다른 모든 이들처럼 나를 재구성하고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을 뿐이란 사실이다.
그라나다로 넘어오는 버스에서 창밖을 보며 내내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수년 전 로마에서, 비엔나에서, 캘리포니아 등에서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복기하며 스페인에서도 나만의 음악 리스트를 만들 생각에 조용히 설레었다. 일요일인 오늘 마침내 빨래를 했고, 청결한 향을 머금은 티셔츠와 깨끗한 속옷과 양말들로 가방을 채워 넣었다. 늘 그렇듯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먹고 있는데 어딜가나 내가 좋아하는 여름 제철 과일이 제일 맛있다. 한국에 가면 누가 뭐래도 확고한, 의심할 여지없는 내 ‘취향‘인,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뼈다귀 해장국, 순대 국밥을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