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언론 창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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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새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 강연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AI 교육을 시작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추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되살릴 ‘치트키’로 AI를 지목하며, 조기교육으로 인재를 길러 경제성장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AI에만 10조 1000억원을 배정하며 AI 산업에 전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학교 현장이 정치·경제 논리에 요동치는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교육의 주무 부처도 아닌 기재부가 교육과정 개편을 들고나온 배경도 분명치 않다. 장관 한 사람의 경솔한 언행이나 부처 간 힘겨루기로 축소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마주한 본질적 위협은 사회를 잠식한 기술만능주의, 교육과 인간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다.
손에 망치를 들면 세상이 온통 못으로 보인다
“손에 망치를 들면 세상이 온통 못으로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학교는 늘 두드려야 할 못 천지였다. 요즘 가장 번쩍이는 망치는 첨단 기술이다. ‘AI 디지털 교과서’라는 거대한 망치는 이미 막대한 예산을 삼켰지만, 남긴 것은 교육력 손실과 집단적 멀미였다. 그럼에도 학교를 ‘못 천지’로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교육 문제에 관한 한 모두 쉽게 해결책을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 필요한 건 문제를 대면하는 능력이다. 옆 반 2학년 담임 교사는 “방학이 끝나고 왔더니 학교 이름도 한글로 못 쓰는 아이들이 있다”라고 한숨을 쉰다. 5학년 담임인 나는 수학 학습 능력 격차로 고민이 많다. 학생들에게 수학 흥미를 붙여보려 많은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국 가장 확실한 수업 도구는 ‘분필’이고, 현란한 코스웨어보다 잘 깎은 연필과 지우개가 학생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한 일반계고 교사는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차라리 학생들이 성적에 불만이라도 품어주면 좋겠다. 교실에 누워 자는 아이들 대부분은 성적은 물론 학교생활 자체에 관심이 없다.”
학습 동기 결핍, 기초학력 부족, 계층 간 격차와 교육 불평등 등 해결할 과제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이 문제들이 초1부터 실시하는 AI 교육과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방학을 보내고 돌아왔더니 연필 잡는 법도 잊은 초등 저학년 학생의 손에 알고리즘과 태블릿을 쥐어주는 것이 과연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위함인가. 이를 통해 학생들이 소위 AI 인재로 길러질까.
산업 인재 양성론
구 장관은 AI를 통한 경제성장과 이를 위한 인력 양성을 강조했다. 교육을 산업 인재 양성의 도구로 보는 관점은 뿌리 깊다. 물론 학교라는 교육 기관의 인재 양성 기능,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개인의 전인적 발달을 무시하고 인간을 경제적 자원이나 노동력으로만 보는 관점만이 팽배한 결과가 한국 사회의 현재다.
2024년 한 해에만 산업재해로 589명이 사망했고, 하루 평균 1.6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실습 현장에서 학생이 다치고 죽어도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인력 양성의 필요를 모조리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학교가 학생이 자신의 삶의 주체로 살아가도록 돕는 공간이라는 인간 중심 관점과 균형을 잡지 않는 한, 국가 교육 정책은 언제나 학생들의 삶과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다. 학생은 자본 논리와 국가 권력 실현을 위한 부품이 아니다.
초등 AI 교육 이전에 던져야 할 질문들
AI가 교육에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스마트 교육, 사이버교육, K-MOOC, ICT, 유러닝, 각종 교육 플랫폼이 학교에 도입됐으나 학습 격차는 여전하거나 더욱 심화했다. 교육계의 근본적인 고민도 사라지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과연 다른가. 새로운 기술과 교육과정을 섣불리 밀어 넣기 전에, 그간 현장에 도입된 기술적 시도의 명암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작업이 먼저다.
AI를 둘러싼 근본적인 논의는 제대로 시작조차 못 했다. AI는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가 될까 혹은 인간 능력을 퇴화시키는 마취제가 될까. AI는 교육과 관계를 왜곡하는 기제가 될까 새로운 배움의 장을 여는 매개가 될까. AI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권력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AI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적 책임은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기술은 단순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펜으로 글을 쓸 때와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경험이 다른 것처럼, 사용하는 기술에 따라 우리의 인지와 신체, 사회적 관계와 정서적 경험까지 달라진다. 수많은 질문에 대한 교육적 검토 없이 초등 1학년 교실부터 AI 교육과정을 들이밀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아이들은 실험실의 기니피그가 아니다. 충분한 연구와 토론, 검증과 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교실의 하루다. 그 하루는 아이들의 삶과 얼굴, 교사의 시선과 실천, 우리가 어떤 사회와 가치를 지향할지에 대한 응답이다. AI가 인간과 교육의 지평을 확장할지, 관계의 숨결과 눈맞춤을 끊어낼지 아직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술과 자본의 압도적 논리를 넘어 끝내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 기술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교육은 어쩌면 그 물음에 답해야 하는 사회의 마지막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