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05.
2025. 10. 05.
나고야의 지브리 파크에서 하루를 보냈다. 생각보다 덜 한 화려함, 더 한 정교함에 놀랐다. 아시타카, 산, 들개 형제의 거대 동상이 으리으리하게 서있을 줄 알았던 ‘모노노케 빌리지’에는 아시타카가 나고 자란 시골마을과 망루, 에보시가 이끄는 타타라 마을 등이 소박하게 재연되어 있었고, 마을의 논밭에선 아무래도 실제 농작물을 기르는 모양이었다(진짜 자라고 있는 혹은 추수가 끝난 생명인지 알 수 없었다;;). 모노노케 빌리지에 산과 아시타카의 형상이 없고, 진짜 논밭에서 작물을 기른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쿨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하울의 성 내부에는 문 손잡이로 원형 회전판을 돌려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설정을 구현했고, 캘시퍼가 타오르고, 계란과 베이컨이 놓여있는 지저분한 식탁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지브리 영화와 나의 어린 시절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 나는 일본 영화 상영이 불법이던 시절에 10대 시절을 보냈고, 원래 애니메이션 장르를 아주 즐기는 편이 아니라 지브리 영화에 대해서도 최근까지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올해 추석에 가족과 일본 여행 계획이 잡혀서, 오기 전에 공부하는 심정으로 급히 지브리 영화들을 집어삼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마녀배달부 키키, 벼랑 위의 포뇨, 이웃집 토토로 등… 실망한 영화는 없었고, 개인적으로는 ‘모노노케 히메‘, 와 ‘센과 치히로‘가 가장 좋았다. 담대한 메시지도 좋고, 박력 있는 여성 캐릭터들도 멋진데, 만약 내가 이 영화들을 어린 시절에 봤다면 지금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여러모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같진 않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레미제라블을 어린 시절에 그리고 어른이 된 후 봤을 때 느낀 감동의 차원이 달랐고, 그렇게 내면에 새겨진 시간의 깊이와 두께를 감각하는 건 그것대로 근사한 경험이었던지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을 어릴 때 봤어도 마찬가지였을 수 있겠다.
비슷한 시기, 우연찮게 학생들의 성화에 최근 유행하는 다른 애니메이션을 봤었는데 개인적으로 실망했다. 부와 명예, 외모까지 다 갖춘 캐릭터들이 던지는 ‘스스로를 사랑하라’라는 식상한 메시지가 비뚤어진 자기애와 자기 중심성이 범람하는 시대에 추가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볼 땐 인류가 어째 점점 더 쩨쩨하고 좀스럽고 오만해지고 있다.
일본 여행 3일째인데 내내 비가 온다. 오늘 오후 게로에 왔다. 한 켤레뿐인 운동화가 젖어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 빼곤 비 오는 일본도 운치 있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