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교육

가르침, 아노미 시대의 저항

by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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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 시간에 ‘일제의 침략과 독립운동’에 대해 수업하고 있다. 한국 독립운동의 큰 줄기는 무장투쟁론과 실력양성론으로 나뉜다. 수업 흥미를 자극하는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와 서사는 대체로 무장투쟁 실천 역사에서 나온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승리 장면에서 학생들의 눈빛은 반짝 빛난다.


나는 직업 탓인지 교육과 사람을 강조한 외침에 끌린다. 식민지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의 인재 양성, 개인의 정신 개조를 통한 사회 변혁을 꿈꿨던 이들의 목소리에 뭉클해진다. 안창호는 흥사단을 꾸리고 평양에 대성학교를 건립해 실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 양성에 힘썼다. 이회영은 막대한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훈련은 물론 외국어, 역사, 지리 등을 교육해 다음 시대를 준비하도록 했다.


두 가지 노선 모두 역사적 의의와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함석헌은 『오산 팔십년사』 서문에서 독립운동 노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오늘에 와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며 생각할 때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역시 나라 안에 남아 있어, 정치적, 군사적으로 투쟁하는 것보다는 교육을 통해 정신 운동을 한 것이 보다 더 크게 공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엄혹한 시대에 목숨을 걸고 인간을 기르려 했던 이들의 심정을 상상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놀라곤 한다. 나는 숭고한 독립투사가 아니다. 1919년 천안 아우내 장터에 있었다 한들, 과연 거리로 뛰쳐나올 용기가 있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독립운동가들에게 시대가 참혹 그 자체였듯, 2025년 한국의 교사인 내게도 나름의 고통은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정신이 유튜브와 틱톡 너머 자본과 정치 권력에 잠식되고 있다. 만연한 혐오와 차별, 적대에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견디기 쉽지 않다.


일제시기와 달리 현재 교육이 곧 목숨을 건 저항은 아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인간을 기르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훈육조차 위험 부담이 되는 시대에 당도한 건 사실이다. 생활교육은 곧장 억압이나 인권침해로 의심받고, 혐오와 차별을 막으려는 교사의 말과 태도는 정치적 의도를 품은 ‘좌파’, ‘페미’라는 낙인으로 되돌아온다. 기본적인 문장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학교는 길을 잃고 있다. 그런데도 당장 모든 학생이 AI 교육을 받지 않으면 문명인이 되지 못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교육부를 보며, 나는 순간 도시락 폭탄이라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스쳤음을 고백한다.


식민지 현실에서 개인의 정신성을 논하는 교육운동은 한가롭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엔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개인의 역량과 윤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사회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본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이 이제는 깊이 와닿는다.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교육부는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 시 관할청 고발의 요건과 판단 기준, 절차와 방법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교원지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활동 침해 학부모 과태료는 최대 300만원으로 상향하겠다고 한다. 악성 민원을 막고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행정 절차의 정비, 책임 소재의 명문화는 분명 필요하다. 외부 압력에 맞서는 최소한의 방어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녀의 폭력적 행동을 상의하려 전화를 걸었을 때, 돌아오는 첫 말이 “다른 집 아이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던데, 그 집에는 먼저 연락하셨나요?”인 현실 앞에서 깨닫게 된다. 현장에는 법과 제도의 개혁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 시기 독립을 꿈꾸던 이들 앞에 놓인 벽이 일제의 총칼과 민족의 분열이었다면, 지금 우리 앞의 벽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을 성과와 스펙, 데이터로 환원하는 자본 권력. 교육을 책임이 아닌 실적으로 관리하는 행정 권력. 불신과 혐오, 각자도생과 적대 문화의 확산 등이다. 무엇이 옳은지, 인간은 왜 배워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시대, 아니 어쩌면 애초 설명이 필요 없는 일에 대해 끝내 설명을 요구받는 아노미 상황 속에 학교는 놓여 있다.


되돌아갈 빛은 없다


필요한 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권위, 새로운 공적 질서다. 한국 독립운동가들도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지는 않았다. 1907년 도산 안창호와 남강 이승훈이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했을 때, 그들은 유교 국가로서의 조선이란 나라를 복원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근대 국가 건설을 지향했다. 장준하가 1945년 8·15를 광복(光復)이 아니라 신생(新生)이라 불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되돌아갈 빛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에도 되돌아갈 빛, 곧 광복은 없다. AI가 없던 시대로 회귀할 이유도 없고, ‘회복’해야 할 교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은 인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과거 교실의 야만은 우리의 이상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의 교육은 새로운 공공성을 세우는 실천이어야 한다. 비대한 자의식과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선언이 시대정신이 된 지금, 책임과 합의, 소통과 비판의식을 통한 자유를 획득하도록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는 일은 시대를 거스르는 저항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을 기르겠다는 정치적 결단이다. 아노미 시대, 가장 근본적이고도 급진적인 저항은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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