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기 30여 년 전부터 이미 대전에는 성심당이 있었다. 어릴 땐 줄 설 필요도 없었다. 친구들과 은행동에 놀러 갔다가 출출하면 시식용 빵 몇 조각을 집어 먹고 나오는, 편한 놀이터 같은 장소이기도 했다. 작년 3월 롯데분점 근처로 이사 온 뒤 성심당에 자주 간다. 어릴 때부터 빵을 크게 좋아하진 않는 편인데,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거리, 아무리 붐벼도 15분쯤 줄을 서면 살 수 있어 자연스럽게 일상이 됐다. 최근 어떤 공장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머핀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흙맛 같아서 나도 모르게 뱉을 뻔했다. 요 몇 달 사이, 본래 빵맛을 잘 모르던 내 입맛과 기준이 바뀐 모양이다.
오늘도 아점으로 성심당 샌드위치를 먹었다. 한가로이 빵을 씹던 중 종이 가방에 적힌 ‘나의 도시, 나의 성심당’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와 순간 울컥했다. ’나의 도시’를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 감각, 기억과 기준은 안중에 없이 효율과 숫자의 잣대만으로 통합을 외치는 정치 계산에 울분이 올라온 모양이다. ‘오래된 진심’이란 말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도 성심당은 빵 기부, 직원 복지와 문화 행사 등으로 지역에 알려져 있었다. 품질, 가격 경쟁력만으로 입지를 다진 게 아니다. 무리한 확장, 단기적 가시적 이익보다 품질과 사람, 지역 정체성을 선택해 온 ‘오래된 진심’은 설명하지 않아도 맛과 냄새와 문화에서 드러난다.
내게는 어떤 진심이 남아있고 어떤 진심이 나를 떠났는지 생각해 본다. 인류에 대한 애정과 혐오 사이를 헤매는 와중에도 교육에 나름 진심인 인간이지만, 40대 중반을 맞은 내게 가장 큰 적은 허무와 냉소다. 특히 선거를 맞이한 요즘처럼 너도 나도 ‘사회를 바꾸겠다!’, ‘교육을 바꾸겠다!’라고 외치는 목소리와 현수막이 세상을 뒤덮을 때 냉소에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종이 가방에 적힌 ‘70’이란 숫자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오며 무엇을 그리 애썼고, 무엇을 그리 노력했다고 벌써부터 한가로이 허무와 냉소에 빠져있는 걸까. 나는 이제 겨우 40대 중반이다. 공적인 세계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뛰어난 재능도 기술도, 으리으리한 배경도 없지만 진심은, 적어도 내가 진심이라 믿는 무언가는 남아있다. 냉소와 허무를 이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진심이란 게 ’존재한다고 믿는 마음‘만으로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발버둥쳐 제자리일지라도, 진심 어린 빵맛을 알게 된 사람이 흙맛 나는 머핀이나 먹던 시절로 돌아갈 필요는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