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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mal Jun 23. 2024

로고를 만듭니다. #3

Sniper or Shotgun

1. Sniper or Shotgun

요즘 아들과 브롤스타즈라는 게임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소통의 창구 정도로 생각하며 시작한 게임인데 오히려 요즘은 푹 빠져서 아들에게 같이 좀 하자고 조르는 형국이다. 내가 빠지게 된 이 게임의 매력은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 간의 상성 그리고 각자 유리한 유형의 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나 스스로도 몰랐었던 나의 숨겨진 성격을 알게 되었는데 되게 안정적이고 피해가 없는 플레이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저돌적이고 피해를 계산하지 않는 플레이를 하며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제일 애정하는 캐릭터는 좁은 폭의 산탄을 쏘는 캐릭터인데 이걸 좋아하는 이유는 대충 쏴도 한 발은 맞기 때문이다. 


고인이 되신 스티브 잡스 님이 살아있을 때 애플과 구글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애플은 철두철미한 분석을 통해 고객 자신도 몰랐던 니즈를 파악하는 깔끔하게 One shot! One kill! 의 방식이라면 구글은 일단 파악된 부분까지의 문제까지만 솔루션으로 내놓고 반복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차츰 나아지는 형태의 버전 업그레이드 형태의 일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세상의 어떠한 것도 정답을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애플의 방식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들 한 번 즘은 클라이언트에게 보낸 메일이 '최종_찐최종_정말최종_마지막최종' 의 형태를 겪어봤을 것이기 때문에 반복된 해결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현직에 있을 때는 분명 저러한 방식이 아름다운 정답이라고 느꼈는데 오히려 떠나고 나니 실제로 내가 일하는 방식은 뭐라도 하나 맞으면 되었지 형태의 Shotgun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고객의 needs란 마치 각자의 형상처럼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히어로물을 보면서 제작자는 물론 히어로의 매력을 어필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빌런에게 흥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난 5명의 후뢰시맨들 보다는 몰래 매력적인 누님 빌런을 더 좋아했었더랬다.)


어렸을 적 친구들이랑 모눈종이에 했던 잠수함 보드게임이 기억이 난다. 가로 세로에 숫자를 적어두고 총 4칸의 잠수함을 직선으로 그린 후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어뢰를 짐작으로 쏘는 그런 형태의 게임을 난 참 좋아했었다.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맞춰가면서 정답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서로의 요구사항을 조금씩 풀어가면서 맞춰가는 것 그게 바로 디자인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2. 장인은 얼마나 많은 도자기를 깨뜨렸을까?

도자기 장인이 되려면 수 천 수 만의 도자기를 깨뜨려야 한다고 한다. 장인이 되기 위해서 하나의 엄청난 퀄리티의 수작보다 엉터리의 수많은 도자기가 더 의미가 깊다는 이야기다. 실수는 결코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망한 것에는 망한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그 이유를 곱씹은 만큼 나의 영역이 늘어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퀄리티와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터프한 정신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정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디자인 회사에 입사를 했었다. 포토샵이 뭐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뭐고 디자인은 그냥 스케치북에 그려서 하는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고 얼마나 충격이었나 모른다. (다시 0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두근거림이 되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는 난 두려움이 앞선다. 잘 못 되면 어떻게 하지? 망하면 어떻게 하지? 혼나면 어떻게 하지? 많은 걱정이 항상 존재한다. 


이런 내가 프로그램을 습득할 때 했던 방식은 '다 눌러보기'였다.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어도 이해도 안 되고 직접 해 보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버튼을 하나하나 다 눌러봤었다. 두려움이 많던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다가 잘못되면 프로그램을 지우고 다시 깔면 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가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때의 실수가 나에게는 철학이 되어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었다. 두려워할 것 없이 해 보고 지우고 다시 하고의 선택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가 쌓이게 되었다.


결론은 질보단 양이다. 매형은 천천히 해 줘도 괜찮다고 했지만 게지런(게으르지만 부지런)하게 눈 떠 있는 동안에는 버닝모드로 로고를 디자인 중이다.  뭐라도 하면 뭐라도 걸리게 되어 있겠지..

이 중에서 과연 누가 선택이 될 것인가?


[오늘의 디자인]

1.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2. 실수를 디자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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