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의 스케치를 보더니 급 흥분이 되었나 보다. 직접적으로 요청을 하지는 않았지만 얼른 완성본을 보고 싶어 한다. 착실하게 작업 중이라는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 보낸 사진인데 수화기 너머로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난 스케줄을 촉박하게 잡는 것을 싫어한다. 좋은 결과물은 결코 재촉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싶은 나의 합리적 변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서두르고 있다. 매형은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상태가 유선상으로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에 내가 그 시위를 놓을 수 있게 해 줘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어서이다.
그럼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난 오히려 정확한 순서와 절차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미술 시간을 기억해 보자. 찰흙을 이용하여 동물을 만드는 것 따위를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철사와 노끈을 이용하여 뼈대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는 꼭 조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도 가장 우선은 정확한 구도와 스케치이다.
튼튼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선 튼튼한 뼈대가 필요하다.
2. 디자인은 수학이다.
우리는 디자인이라는 학문에 대해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Just 아름답게 만드는 것 아닌가?라는 착각을 한다. 심미성... 중요하다 디자인의 요소이기도 하고.. 하지만 아름다움에는 여러 가지 방향이 존재한다. 무질서함 가운데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도 있겠지만 디자인은 그야말로 질서를 시각화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격과 규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간격과 규칙만 따지면 디자인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달인이 되기 위해서 겪는 배우고 깨뜨리고 다시 규칙을 만드는 수파리(守破離)의 단계를 기억하길 바란다. 무언가 변용하기 위해선 일단 기본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가이드라인과 형태의 조합을 이용하지만 오히려 이런 가이드라인을 쓰기 때문에 디자인이 더 어려워진다. 질서 정연하면서도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고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두 마리도 잡기 힘든 토끼를 세 마리나 잡아야 한다. 다만 디자인을 수학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훈련과 연습으로 공식을 알게 되면 어느 단계까지는 성취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수학을 참 싫어했다. 아마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학만큼 아름다운 학문은 없다. 적어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가.
참으로 간사한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긴 하다. 언젠가는 정답이 없는 학문이라고 이야기하더니 이제 와서 정답을 운운하고 있다니.. 그래도 그게 디자인인걸 뭐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