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우선 나의 디자인 작업 스타일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자면 One Shot! One Kill! 의 천재적인 스타일이 아닌 Shotgun의 대충 뭐라도 하나 맞아라 스타일이다. 상대방의 needs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은 없거니와 그 상대방조차 자신이 뭘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이렇다 보니 자연히 디자인의 스펙트럼은 넓어질 수밖에 없고 필연으로 디자인 작업 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바로 빨리빨리의 민족 아니던가. 절대로 시간은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생각해 본 적은 없겠지만 생각보다 디자인 작업은 사실 굉장히 오랜 시간을 차지한다. 외국의 경우처럼 클라이언트와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바로바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있다면 좋겠지만 한국에서의 디자인이란 그 방향성의 과정까지도 오롯이 디자이너의 몫이 되곤 한다. 뭐랄까 나의 결과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 따위에 내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느끼는 것 같달까? 때론 오히려 너무 깊은 관여로 결과물이 무너지기도 한다. 돈을 지급하는 사람이 '갑'이니 디자인 결과물을 원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때론 그냥 기분을 만끽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사용하는 느낌이다.
어차피 작업을 하는 나의 목적은 분명하다. 나의 결과물을 수용하게끔 하는 것. 프로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그냥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방향성을 고려해 보는 것은 필수요소이다. 비(非) 디자이너는 오히려 이런 고민조차도 숨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택을 받는 것은 단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다. 나머지는 작업폴더의 구석에 남겨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택받지 못한 디자인은 의미가 없는가?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해 보자면 난 그렇지 않다.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해 봄으로서 얻는 지식적 차원의 이득과 내가 어떠한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어떤 형태의 것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가지게 된 철학은 '함부로 예상을 하지 말자.'이다. 만들다 보면 어떤 것들은 뭔가 더 정성을 들이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드는 녀석들이 있는가 한편 대충대충 만드는 아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신기한 것은 당연 내가 흘린 피, 땀, 눈물로 결과물이 결정될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어이없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더 찜찜한 건 고생한 것보다 대충 한 것이 세금계산서 상에 더 높은 금액으로 찍혀 있을 때가 더러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지들이 뭘 안다고..'라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사람은 각자의 모습대로 각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뱀이나 도마뱀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거란 착각을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덕분에 나의 디자인 도전기에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나뿐만이 아닌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디자이너들은 항상 새로움에 도전을 하고 있는 중 일 것이다. 항상 자르고 붙이고 조합하고 생성하고 1px의 세계를 앤트맨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그들만의 양자역학 속에서 고군분투 중 일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