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개척시대 개척민의 삶 (4)
도박은 할 게 별로 없는 서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오락이었다. 서부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한번쯤은 도박에 손을 대 본다. 카우보이, 광부, 벌목인, 사업가, 그리고 판사와 보안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도박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 땅의 도박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유럽의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도 인디언들은 성스러운 도박의 업을 계승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도박은 실제로 종교적인 것이었다. 도박은 종류에 따라 낮과 밤, 그리고 여름과 겨울에 하는 것들이 제각기 달랐고, 그러한 금기를 지키지 않으면 눈이 멀기 십상이었다. 서부에 인상깊은 유적지를 남겨놓은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도시의 중심지에 도박의 신을 위한 신성한 사원을 건축하기도 했다.
서부에서도 정착지가 세워지면 가장 먼저 세워지는 건물은 교회가 아니라 도박장이었다. 정착지가 성장함에 따라 도박장의 규모도 커졌고, 도박의 종류도 더 다양해졌다. 도박장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었고, 술집과 공연무대, 객실이 딸려있기도 했다.
말하자면 도박장은, 일종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 오늘날의 백화점이나 컨벤션센터 같은 공간이었다. 도박장을 중심으로 지역경제가 굴러갔고, 한 마을에 얼마나 많은 전문 타짜들이 있느냐에 따라 그 마을의 번영도가 판가름났다.
도박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전문 도박꾼들은 매우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도박 사업은 당시에 가장 많은 돈을 끌어들이는 분야였고, 오늘날로 따지자면 전문 도박꾼들은 전략 컨설턴트나 애널리스트 같은 느낌이었다. 종종 도덕적인 비난이나 약간의 질시를 받는 것마저 비슷했다.
매우 존경받는 프로 도박꾼들은 술도 마시지 않았고, 공사를 치지도 않았으며, 욕설도 하지 않는 아주 점잖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기꾼들도 늘상 그들과 함께하려는 얼치기들과 한 테이블에 앉곤 하였다.
1849년, 서부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는 도박장이 우후죽순 들어섰으며, 캘리포니아 전역의 여러 광산마을에서도 소규모 도박장들이 생겨났다.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온 사람들의 원정길을 따라서 도박장이 바글거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서부에 닿지도 못한 채 가는 길에 있던 어느 영세한 도박장에서 끝장나곤 했다.
유명한 여성 도박꾼들도 있었다. 키티 리로이(Kitty LeRoy)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 도박꾼은 아주 아름다웠고, 남성편력으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여러 전설을 남겼는데, 뛰어난 칼던지기와 사격 솜씨를 지녔으며, 집시같은 옷을 입었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키티는 도박을 잘했다. 그녀는 남성 파트너를 두고도 일생토록 도박을 했고(당시에는 드문 일이었다), 파트너가 질리면 곧장 떠나버리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키티 리로이는 28세의 나이로 전남편에게 가슴팍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서부에서 가장 흔했던 도박은 '모든 도박의 왕', '서부를 점령한 게임'이라고도 불렸던, 프랑스에서 유래한 '파로'라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룰렛, 포커, 척 어 럭과 같은 게임도 매우 인기있었으며, 중국인들이 들여온 판탄(番攤)이라는 도박도 빼놓을 수 없었다. 경마, 권투, 그리고 닭싸움과 개싸움, 심지어는 흑표범과 곰이 서로 맞붙는 것에도 판돈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