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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움 Feb 21. 2024

바람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저녁 노을 빛을 닮은 모과가 탐스럽게 익어가던 작년 11월

무심하게 서걱거리던 내 마음 위로 뭉클하게 떨어지던 아빠의 진심을.


일교차가 컸던 어느 날 찾아뵌 지 오래되어 미루고 미루다 숙제하듯 전화드렸는데

연신 기침을 하시며 여느 때처럼 센 척하려고 먼저 윽박지르지 않으신다.

독감에 걸려 지금 통화하기 힘드시다고...

알았다고 밥 잘 챙겨드시고 얼른 나으시라고 하며 재빨리 전화를 끊으려는데

저 멀리 수화기 너머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온 말끝이 다급하게 나를 붙잡는다.

“은진아… 많이 보고 싶다!”

내 생애 처음 듣는 말에 어찌할 줄 몰라 뒤뚱거리며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허둥댄다.

그 한마디가 마치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들려서.

오랫동안 간격을 맞춰 질서 있게 자리 잡고 구령에 맞춰 팽팽하게 줄을 끌어당겨왔던 

줄다리기의 앞줄 선수가 속절없이 주저앉는 듯한 순간이었다.    


6년 전 아빠와 나는 서로를 향해 차갑게 살을 날렸다.

당시 나는 4차 시험관 시술을 장기요법으로 진행 중이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져 마음이 상해 있었고 간절함이 지나쳐 극심한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정신 차린 줄 알았던 아빠가 또다시 부끄러움을 모르고

수년동안 가족들을 배신하고 있었다는 비극적 현실이 드러났다.  

아빠와 어떤 말을 섞기도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던 그때

‘더러운 내 피가 흐르는 아기를 왜 굳이 가지려고 하느냐, 나는 싫다. 

하나님이 네 기도에 관심도 없는데 더 이상 헛수고 말라.’ 했던 아빠의 말은 내게 치명상을 입혔다.

나는 ‘훗날 아빠가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 하나님이 아빠를 용서하셔도 아빠 스스로 자신을 

너무 쉽게 용서하지는 마시라.’고 독하게 응수했다.


평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한 적도 없이 살아온 아빠는 유책배우자로 궁지에 몰리니 

더 당당하고 뻔뻔하게 다 큰 자식들이 부모님을 이혼시키려 한다고 우리 4남매를 원망하며 

늘그막에 가족들에게 불쌍하게 버림받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그 후 엄마는 3년간 길고 긴 이혼소송을 했고 가족 모두 하루도 힘든 지리멸렬한 시간을

매일 크고 작은 방식으로 죽음과 맞닥뜨리며 보냈다.  


그래도 부모님인데 마땅히 이리 대해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벗어던지니 살 것 같았지만

아빠를 생각하면 늘 내 존재 일부가 누덕누덕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의 안녕을 위해 끝내 절연할 수는 없고 거리를 두고 아빠를 그냥 알고 지내는 

독거노인으로 생각하자 마음먹고 나서야

김밥 쌌던 은박지처럼 마구 구겨지고 찢긴 나에게 충분히 슬퍼할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어떤 다정함은 숨구멍이 되어 주고 마음에 새로운 물길을 내준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에서 말하는 지극히 작은 자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아져 흔들리며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는 나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보여주셔서 나에게 다정한 눈빛과 온기 담은 말을 보낼 수 있었고

누구보다 스스로를 미워하며 가장 힘든 시간 한복판에 끈덕지게 벌주며 세워 두었던

그래서 한없이 외로웠던 조각조각 부서진 나를 찾아가 끌어안을 수 있었다.


수치도 모르고 자신마저 속이는 아빠에게 가닿기나 할까 슬퍼하며 내뱉었던 말.

‘아빠 스스로 자신을 너무 쉽게 용서하지는 마시라.’

돌이켜보니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는 아빠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혹시 스스로 가둔 감옥에 복역하듯 살며 나처럼 숨만 쉬어도 좋다고 웅크려 있진 않았을까?

오랜 벗처럼 어느새 익숙해진 서글픔, 고통, 한숨에 기대는 것이 아빠가 할 수 있는 전부라 생각하면서.  


내게 그러하셨듯 단지 한 걸음 더 내딛기에 충분한 빛이라도 비추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설핏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 끝에 나도 모르게 신비 속에 잠긴다.

아빠의 일그러지지 않고 구겨지지 않은 존재의 원형을.

누군가의 기대로 덧대어지지도 부풀려지지도 않은 침범당해 변형되지 않은

아빠 안에 고스란히 내재되어 있는 존재 본연의 모습인 신의 형상을 보고 싶다고.


이내 호기롭게 나섰다가 슬그머니 피하게 될까 무리하였다가 뚝딱거리게 될까 한 발 물러선 후  

단숨에 저벅저벅 큰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나를 다독인다.

그래. 아득했던 이 마음의 일렁임을 깊이 머물게 하여 

성실하게 공글리고 공글리다가 들레지 않고 가만가만 다가가자.

여전히 거짓말도 잘하고 엄살도 심한 아빠지만 오늘 보여주신 진심 한 줌을 기억하며

아주 작은 결심을 한다. 아빠가 즐겨 드시는 믹스 커피 저당으로 바꿔드려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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