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솔기는 나의 은밀한 자랑입니다
미결 / 안희연
사과파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날들입니다
진심을 다하려는 태도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고
멀리두고 덤덤히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반으로 갈린 사과파이가 간곡히 품고 있었을
물컹과 왈칵과 달콤,
후후 불어 삼켜야 하는 그 모든 것
사과파이의 영혼 같습니다
나를 쪼개면 무엇이 흘러나올지 궁금합니다
쪼개진다는 공포보다
쪼갰는데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공포가 더 크지만
밤은 안 보이는 것을
보기에 좋은 시간일까요 나쁜 시간일까요
사실 나는 나를 자주 쪼개봅니다
엉성한 솔기는 나의 은밀한 자랑입니다
아무도 누구도 아무도
들어 있지 않은
반대편이 늘 건너편인 것은 아니라고
속삭이는 문
결말은 필요 없어요
협곡을 뛰어넘기 위해 필요한 건
두 다리가 아니에요
여기 이렇게 주저앉아
깊어져가는 계단이면 돼요
단춧구멍만한 믿음이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