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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담 Oct 22. 2022

햇빛 (陽光)

적어도 내게 타인과의 관계는 늘 일정 정도의 노력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편지는 모름지기 받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었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생일선물을 챙겨받고도 내 생일엔 편지 한 번 써주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그래도 크게 불평을 하거나 거부감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감에 있어 노력을 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익숙했으며, 내가 들이는 마음의 크기가 상대방보다 크더라도 타인의 마음까지 내가 나서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인간관계, 특히 몇몇 친구관계에 들였던 다소 맹목적이고 불균형적인 노력은 ‘친구’라고 명명한 상대에게 충성심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자 흘러나온 무의식의 아우성이었다.


그러던 내가 2018년 봄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당시 난 좋은 기회로 중국 칭다오로 2개월 단기 인턴십을 떠났다. 사실 칭다오에서는 3년 전에도 6개월간 인턴으로 생활했었는데, 그 시간은 내게 버거우면서도 오묘하게 외로운 기억을 남겼다. 한국인 대학생 인턴을 향한 텃세, 직원들 간의 알력다툼, 돌고도는 묘한 따돌림 속에서 무척이나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3년의 시간이 흘러 같은 계절이 돌아왔고, 다시 한 번 같은 도시에서 인턴을 하게 되다니. 인턴 프로그램 합격에 기뻐하면서도 마음이 조금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엔 인간관계 방면의 그 어떤 기대나 희망도 가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곧 떠날 2개월짜리 단기 인턴에게 마음을 쏟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겨울철 얼음장처럼 단단한 마음의 장벽을 녹인 것은 바로 난난(楠楠)이라고 하는 중국인 직원이었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나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다른 중국인 언니로부터 내 위챗 ID를 넘겨받은 난난이는 출근 첫 날 통성명마저도 생략한 돌직구 메시지를 내게 보내왔다.


  ‘같이 영화보러가지 않을래?’

  ‘그래 좋아. ’

  ‘너희 집 근처 영화관에서 만나자. 지금 나와. ’


지금? 지금이라고?

가뜩이나 오랜 취업 준비로 새로운 인간관계가 낯설고 어렵기까지 했던 난 일면식조차 없는 직원과의 첫 대면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덜되어 있었고, 퇴근 후 이미 집 앞까지 다 와버린지라 조금은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 봐야 혼자 침대 위에 나뒹굴 내 모습이 눈에 선했고, 딱히 둘러댈 말도 없었기에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상영관 앞에 다다르니 아담한 키와 수수한 미소를 가진 동갑내기 여자애가 나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사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고서.


그것이 난난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속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영혼의 자매(灵魂闺蜜),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었는데, 거의 매일을 붙어 있었고 난난이로부터 이유 없는 호의를 받는 날이 참 많았다.

 

우린 둘 다 먹을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어느 아침, 조례시간 전 잠깐 짬을 내어 중국식 두유 또우장(豆浆)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이 때 내가 맥도날드 또우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사실 내겐 또우장이라는 음료에 대한 표본이 많지 않았다ㅡ어학연수 시절 학생식당에서 먹던 또우장과 칭다오 공항 5번 게이트 앞 맥도날드에서 먹은 또우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학생식당에서 먹은 또우장은 지나치게 건강한 맛이었고 맥도날드의 또우장은 적당히 건강에 해로운 달달한 맛이었기에, 난 맥도날도 또우장을 넘어서는 맛을 느껴본 적 없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된 외국인 친구가 “나는 김치볶음밥을 좋아해. 세븐일레븐에서 파는 김치볶음밥이 제일 맛있었어. ” 라고 말한 순간과도 비슷했을 것이다.


외국인 친구 김시담의 충격발언에 장내는 일순간 고요해졌고, 동료들 간 안타까운 눈빛이 오갔다. 그리고 그 중 아마 가장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 사람은 난난이었을 테다. 이튿날 그녀는 색색가지의 또우장이 담긴 텀블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출근했다.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는데, 검은콩, 녹두, 노란콩, 이 세상에 있는 콩이란 콩은 다 가져다 만든 것 같았다. 형형색색의 병들 앞에서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난난이를 보고 있자니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 했다.


어느 날은 자리 위에 따뜻한 전병이 올려져 있었다. 학창시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딸기우유를 보았을 때의 설렘이 잠시 나를 찾아왔다. 명탐정 김시담의 촉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범인은 난난이가 분명했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난난이가 내 것과 같은 전병 봉지를 쥐고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난난이 너지!"

"응, 깜짝 놀래켜 주려고 했는데 난 줄 어떻게 알았지? 혹시 뭐 남자 직원이 준 건줄 알고 설렜나?"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장난기와 뿌듯함이 한데 섞인 목소리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지난 아침 내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까먹은 사탕봉지들을 보고선 타국에 와서 사탕봉지나(?) 까먹고 있는 내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시담이 아침은 내가 챙겨주겠어' 라는 결심이 선 그녀는, 인근에서 제일 맛있는 전병집을 수소문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 사왔다고 했다.

어쩐지 그날따라 난난이 눈밑 다크써클이 더 진해보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내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이유도.

그 날 이후로도 난난이는 손수 만든 라오간마볶음밥(중국식 매운 볶음밥), 죽, 샌드위치 등을 자리에 두고 갔는데, 덕분에 난 다시는 홀로 사탕봉지를 까먹으며 배곯는 날이 없었다.



도대체 나의 어떤 점이 그 친구로 하여금 나를 이토록 좋아하게 만들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사실 이같이 이유 없는 호의와 관심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많이 얼떨떨했다. 인간관계에 잔뜩 애를 쓰고도 이리저리 치이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내 자신이나 잘 챙기자는 오기가 생겼던 나였지만, 국적마저 다른 친구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고 나니 모든 관계로부터 비겁하게 뒷걸음질치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난 더할 나위 없는 온기 속에 2018년의 봄을 보냈고,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그녀는 택시에서 내 손을 꼬옥 잡고 함께 울며 나를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리곤 출국장 게이트 앞에서 내게 온갖 선물들을 바리바리 챙겨주며 “시담, 지난 두 달간 사무실에 들어온 햇살(陽光)처럼 따뜻한 온기를 나눠줘서 고마워. ” 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도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은 어떤 숭고한 마음이었을까? 

난난이가 내게 전해준 온기야말로 나의 마음을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따뜻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온기를 빌려 난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시험을 보았고, 면접을 준비했고. 그 모든 과정에 난난이의 온기와 격려가 함께했다. 어떻게 보면 2개월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린 아마 정형화된 시간의 길이로 따질 수 없는 어떠한 공간을 서로의 인생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살기 팍팍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난난이를 떠올릴 때마다 내가 어느 계절에 있고 어느 날씨에 있건, 우리가 함께한 따뜻했던 봄날의 온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난난이가 내게 그랬듯, 나 또한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에 온기를 전하며 누군가의 굳게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을 밝히고 싶다는 말은 헛된 희망임을 알지만, 나의 빛으로 적어도 누군가의 하루는 밝힐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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