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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담 Oct 11. 2022

하동

세상과 나 사이 무언가 커다랗고 고약한 녀석이 끼어있는 느낌이었다.

서걱서걱하고, 무미건조한, 커다란 스펀지 같은 그것.


몇 해 전만 해도, 깊이 있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내게 주는 순수한 유희가 있었다.

국어사전 속 ‘행복’, ‘기쁨’, ‘벅차오름’ 따위의 명사를 묘사된 척도 그 이상으로 느낄 수 있다는 데에는 경건한 자부심이 따랐다. 무언가를 보고 들을 때, 마음속 깊숙이서부터 피어난 어떤 감정들은 왼쪽 가슴을 한 바퀴 둘러 아리게 울리곤 했다. 두근거림으로 요동쳤고, 심장이 지면까지 내달리는 듯한 육중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것은 만물에 대한 감사, 그리고 오롯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순수가 사라지진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럴 때면, 오랜 시간이 흘러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바뀌어도 지금의 이 천진함만큼은 간직하고 싶다고 글을 썼다. 그것은 일종의 기도문이었으리라.     


나는 해를 거듭하며 세상일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그 중 하나는 불행하게도 내 감정을 외면하는 것, 즉,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는 것이었다. 일상의 감동을 심장 끝까지 들이마시지 않는 버릇은 나로 하여금 그 반대급부적인 감정들―실망, 슬픔 등―에 보다 의연할 수 있도록 도왔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어른이 된 듯한 내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고 부끄러운 고백을 한다. 크고 고약한 그 녀석을 내 마음에 들인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의 범주를 환하게 비추고 있던 가로등들을 스스로 소멸시키는 잘못을 저질렀다. 간직하고 싶어했던 순수를 잃었다.

‘예전의 나는 일상 속 아주 작은 기쁨만으로 마음의 빛을 가득 채웠던 사람이었는데……. ’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온전하지 않았고, 충만하지 못했다.     


매년 벚꽃이 필 무렵, 알 수 없는 바람이 나를 찾아와 ‘하동에 가고 싶어’ 라고 말을 걸었다. 10년도 더 전에 읽은 책이었지만, 소설 <역마>의 배경인 ‘하동’과 ‘화개장터’에 대한 호기심은 내 마음속 작은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고, 20대의 마지막 봄, 나는 하동을 찾았다.     

소설 속 ‘화개장터’는 ‘하동’이라는 공간에 대한 신화적 환상을 갖게 해준 장소였다. 그러나 화개장터를 실제로 마주하였을 때 그것은 섬진강 끝자락의 어귀만큼이나 고요하게ㅡ내가 가졌던 환상의 무게가 무색하리만치 고요하게ㅡ 내 마음을 통과하였다.

무미건조하게 말라가는 마음의 주름들 사이로 부드러운 숨결을 불어넣어준 곳은 지리산의 푸른 둘레길이었다.


햇빛이 대지를 따뜻하게 감싸안는 봄이었다. 푸른 골짜기와 개울 위로 내려앉은 햇살의 윤무는 그 자체로 숭고한 의식같아 보였으며, 그 아름다운 풍경은 낯선 곳의 이방인조차 너그럽게 감싸안았다.

눈 앞의 모든 여백을 촘촘히 수놓고 있는 골짜기와 폭포, 제 아름다움을 이기지 못하고 한껏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작은 꽃망울들까지. 서투른 눈길 한 번, 어설픈 깜빡임 한 번이 애석하게 느껴졌던 난 산 중턱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서서 나를 둘러싼 이 세계의 고결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음미하기로 했다.


나를 사로잡은 풍광의 끝자락까지 고개를 들어 그 실체를 눈에 담으려 한 순간, 나는 지리산의 웅장한 포근함에 압도당했다. 산등성이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마다 눈에 스치는 모든 풍경들은 빼곡한 아름다움을 선사하였다. 어딘지 모르게 정신이 아득해져 옴을 느꼈다. 꾸욱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에는, 투명한 꽃잎들이 그 어떤 아쉬움도 서글픔도 없는 듯 가벼이 흩날리며 대지 위를 수놓았다. 나는 별안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슬픔이 아니었다. 미련도, 아쉬움도,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내가 그토록 되찾고 싶어했던 감정의 환희를 멀찌감치에서나마 붙잡을 수 있겠다는 나지막한 안도였다. 봄의 한 자락에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온전히 행복한 자신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음속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감정의 순수를 붙잡고 멈춰세웠던 고개를 돌렸을 때, 시선 왼편으로 보랏빛 각시붓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 발짝씩 내딛을 때마다 한 송이는 두 송이, 두 송이는 세 송이가 되었고, 그것은 이윽고 나를 그들만의 군락으로 이끌었다. 일생 그토록 숭고한 보랏빛 장관은 처음이었다. 도시에서 자라 사람 손을 탄 화단을 보는 일에만 익숙했던 나는 온전히 무해한 자연 속 그들만의 군락을 일구어낸 꽃봉오리의 강인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눈 앞의 보라빛 장관에 넋을 잃고 서 있을 때, 어디선가 명랑한 개울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야생화 군락 너머를 바라보니, 쏟아지는 햇살 아래로 맑은 물길 하나가 흐르고 있었다.  


두 발로 딛고 선 대지의 관능이 가슴 깊숙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무미건조하고 푸석푸석하게 말라붙은 심장께에 작은 동요가 번졌다. 산자락에 걸터앉아 엷게 불어오는 바람과 부드러운 햇빛을 다시 한 번 깊이 들이마셨고, 내 앞의 신화를 시선 가득 아로새겼다.

망가진 나를 바로 앉히기 위해 마음속 작은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틔우고, 진심을 다해 울고 웃어보리라,

멀어지는 풍경을 향해 다짐했다.


자연의 언어와 울림으로써 나를 둘러싼 비겁한 장막들을 걷어낼 수 있으리란 용기를 얻은 4월이었다.

매년 봄 나를 찾아와 ‘하동에 가자’ 며 속삭이던 마음 속 전령들이 떠올랐다.

자연으로의 회귀, 망가져 가는 나를 바로세우기 위한 답을 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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