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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6. 2023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겠다고했지 똥을 치우겠다고는 안했어

선근증/ 자궁내막증 환자의 임신출산기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4.5킬로가 넘는 아이였다.

이후 쭉 그 커다란 덩치와 무게를 유지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럼 자기는 응급실에 한 번도 안 가봤어?"

"응. 난 당신 병수발 드느라 별 군데를 다 가보는 거야."


하하, 이거 참 미안하게 됐네.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는 하나로

내가 당신에게 너무 못 볼 꼴을 많이 보인 듯 하구료.


우리 남편, 보호자로서 핵 매운맛은 참 무수히도 많았겠지만 내 나름의 보여주는? 자로서 가장 강렬하고 창피했던 기억이 하나 있다.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하던 밤이었다.

그날은 예정일이 하루 지난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이 아무렇지도 않았고,

출산의 징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예정일이 지난 지 5일 정도가 되면 아이가 뱃속에서 태변을 눌 수도 있고 막달에는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포동포동하게 커가기 때문에 낳는 과정이 힘들어질 수 있어 유도분만을 해야 된다던데~?'

그런데 출산 경험담을 보면 유도분만을 했다가 고생만 디지게 하고 결국 제왕절개로 이어졌다는 후기들이 넘쳐났다.

아침에 몸이 가뿐하고 아무렇지도 않아서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 이러다 나도
유도분만하고 제왕크리 타는 거 아니야??



이미 모든 집청소와 냉장고 청소 등 할만한 살림은 다 해놓은 뒤였다.

더 어딘가를 쓸고 닦고 싶어도 닦을 곳이 없었다.

'안 되겠어, 계단을 올라가야겠어!!'

밖은 한겨울이었다. 옷을 둥개둥개 단디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건물 끝까지 오르기를 반복했다.

43층을 오르니 온몸에 땀이 흠뻑 났다.

'이러다 내 도가니가 부서지나 골반이 부서지나 매한가지가 되겠다.'

집에 돌아와서 몸을 담그고 때를 밀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미 이번 달에 몸 무겁다는 핑계로 외식을 많이 했는데, 그날따라 갈비가 너무 너무, 정말 너무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이제까지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남편을 부려먹은 건 다 의미 없고, 오늘 이 갈비를 꼭 먹어야만 되겠다는 강한 계시에 휩싸였다.

"여보오~ 우리 갈비 먹으러 가쟈"

신나게 냠냠 쩝쩝 갈비를 먹고 돌아왔는데

아버님이 보내주신 딸기가 눈에 보였다.

이 또한 오늘 먹지 않으면 왠지 서운할 것 같았다.


"당신 딸기 먹을래?"

"어우, 난 너무 배불러 더 못 먹겠어. 당신 마니머거~"

"그럼 그러까앙~ 히히"

딸기까지 냠냠 야무지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스르르 들려고 하는데,


펑!!!


배에서 엄청 큰 물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나는 핫! 하면서 내 생에 가장 빠른 몸놀림으로 침대 밖으로 튀어나왔다. 침대 시트와 이불을 엊그제 새로 바꿨단 말이다.


다리 사이로 연한 락스 냄새나는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 의지로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여보!! 나 양수 터졌어어!!!"

"헐 어떡해 어떡하지? 응? 어떡해? 어떻게 해야 되지??"

남편의 당황해하는 모습에 웃음이 다. 웃었더니 다리로 물이 더 출출 흘러내렸다.

"아 웃기지 말라고~ 빨리 짐가방 챙겨놓은 거 들고 나와! 병원 가야 돼!!"


병원에 도착해 가족분만실에 들어가서 배와 팔에 기계를 주렁주렁 달고 조심히 누웠다. 앞으로 얼마나 아파질지 엄청 떨렸고 그날 티비에선 무릎팍 도사에 정우성 씨가 나와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가 않았다.


간호사가 관장약을 넣고 최소 5분 참으라고 했는데

아 이건 무슨 엄청난 약인건지 2분도 못 참을 것 같았다.

'아까 목욕하고 응가도 시원하게 누었으니 뱃속에 뭐 별로 없을 거야'

배에 힘이 들어가면 자꾸만 양수가 졸졸졸 나와서 적당히 마무리했다.

진통측정기에서는 내가 상당히 아프다고 계속 그래프가 올라가고 있는데 나는 평소에 생리통에 단련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견딜 만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적막 속에 흘러갔다.

갑자기 배가 엄청 아프면서 이게 무슨 통증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고함을 지르고 싶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

고함과 동시에 남아있던 관장약과 미처 배출되지 못한 내 속의 것들이 분만실 바닥에 쏟아졌다. 몸이 너무 괴로워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내 응가를 다 치웠다. 너무 창피했다.

.....


한 시간 반 정도가 흘렀을까

미쳐버릴 것 같은 통증이 5분, 3분마다 오기 시작했다.

진통이 몰아칠 땐 "여보!! 나는 아무래도 자연분만 못 할 앤가 봐. 수술해달라구 그랙!!!!" 하다가 1분이 지나가고 나면 괜찮았다가

미친 사람처럼 계속 그 말을 5분마다 반복했다.

거기서 한 시간 여가 더 흘렀을 땐 정말 단전에서부터 우렁찬 함성이 밀려 나왔고 간호사한테 제발 몇 프로 진행됐는지 좀 봐달라고 해달라고 남편한테 애원했다. 남편은 아까 그 사건도 있고 해서 체면이 말이 아닌 듯했다. 그치만 난 염치고 뭐고 챙길 겨를이 없었다.

저 깊은 산속의 자연인처럼 으어어어어어어어어!! 하면서 소리를 쳤다.

간호사가 왔다.

"산모님, 르봐이예 분만하신다고 해놓구서 이렇게 소리 지르시면 안 돼요."

"제발 내진 한 번만 해주세요. 제발요."

"초산이라 아직 멀었어요."

"제발요"

간호사가 정말 피곤하게 한다는 표정으로 내진을 했다. 그러더니 안색이 싹 변하며, 손을 꺼내지 않고 과장님께 콜을 올렸다.

"여기 산모 다 열렸고 지금 아기 머리가 바로 앞에 내려와 있어요!!"

의료진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침대가 순식간에 트랜스포머처럼 분만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당직쌤이 들어오셨는데 내 담당선생님이셨다.

너무나 잘생긴 나의 구세주로 보였다.

"제가 하나 둘 셋 할 테니까

구령에 맞춰서 힘을 주세요!!"

구령에 맞추어 힘을 두 번 주니까 무언가 후루룩 하면서 아기가 나왔고, 선생님은 첫째인데 이렇게 빨리 낳은 산모는 드물다면서, 다음에는 진짜 빨리 오지 않으면 길에서 낳겠다고 하셨다.


'아하하~ 나 아기 잘 낳네. 이제 물이랑 밥 먹으러 갈 수 있겠군. 생각보다 막 또 글케 힘들진 않았어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정신으로 하는 게 아닌 게 결혼과 출산이라는데 정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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