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Sep 26. 2023

대체 내가 어쩌다 임신이야?

선근증/ 자궁내막증 환자의 임신출산기

첫 아이를 가질 무렵 남편은 직장을 옮겼고

그 동네는 나랑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다.

변 지리감도 없고, 친구들도 친정도 다 멀었다.

남편은 매일 너무 바빴고 나는 장롱면허였다.

정까지 혼자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몸이 자꾸 무거워져 힘이 들었는데, 남편한테 쉬는 날에 우리 집에 한번 가자고 말하기가 싫었다. 아니 그걸 말로 해야 아나?

남편이 날로 날로 자꾸 꼴뵈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기르다 보니 나는 더 날 선 암탉처럼 되어갔다.

첫 아이를 낳던 날에도 밤새 진통하고 새벽에 아이 낳는 것 보고 남편은 바로 출근을 했고 사흘 후 퇴원을 해야 하는데 간에 맞춰서 올 수가 없었다.

는 왜 하필 겨울에 낳아서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원 로비엔 차가운 바람이 휘이잉 들어왔다.

아기를 안고 텅 빈 병원 로비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내 마음까지 무척 시려웠다.

소아과를 갈 때도 친구들 결혼식을 갈 때도 시댁 행사를 갈 때에까지도 남편은 동행해 줄 수가 없었고 나는 그런 남편이 너무 미웠다.


그 무렵의 나는 늘 화가 많았다.


나는 찐 내향형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집에 있는 것과 상황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만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보다 못한 남편이 문화센터라도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좋은 생각 같아서 이곳저곳에 접수를 했다. 그런데 낮에 잠깐이라도 돌아다니려면 개강 전까지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서 적응을 완료해야 했고 갑자기 뭐가 바빠졌지만 하나하나씩 착착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어린이집에 무척 적응을 잘했고 나는 즐겁게 문화센터 업에 갔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너무 뽈뽈대고 돌아다닌 탓인지 체력이 영 예전 같지가 않았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어린이집에 하루 두 번 아이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너무 지쳤고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쫑알대는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해 주기가 힘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첫 생리 시작 이후 이제껏 생리주기가 단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는데 생리가 조금 늦는 것 같았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흘이 지나갔다.

산부인과에 조용히 혼자 갔다. 나는 여기로 온 뒤로 늘 혼자였으니까.


초음파를 배에 대는 순간 알았다.

아기집이었다.


임신했구나!!!

맙소사.

내 문화센터는!!



선생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지금 자궁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이 상황에 임신이 된 게 신기하다고 하셨다.

"다비님, 혹시라도 피가 나거든 지체 말고 곧바로 오셔야 해요"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펑펑 났다.

내 몸이 안 좋다는 것도 겁이 나고, 왜 하필 지금 내가 좀 즐겁게 지내보려니까 다시 날 집안에 주저앉히는 건가 싶어서 화도 났다.

그러면서 아이를 반가워하지 않고 내 생각만 하고 있다는 점 뱃속 아기에게 미안해서 또 펑펑펑 울었다.

날 집에 어떻게 운전을 하고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때가 내 의 시작이었다.



첫아이 임신을 확인할 때 선근증이 있다고 들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선근증은 생리통과 양이 너무 심하고 힘들최대한 버티다가 적출하는 것 밖에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 낳고 돌도 되기 전부터 임신을 시도했었는데 일 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둘째를 가졌을 때 자궁 곳곳에 피고임이 있었고 전치태반이 있어서 피가 나오면 재빨리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들었다.

제가 이 아기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까요?



분명 내 인생인데 내 맘대로 안 되는 이야기

계속 이어집니다.





독자님의 하트는 작가에게 행복입니다 :D
아래의 라이킷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이전 02화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겠다고했지 똥을 치우겠다고는 안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