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옛날 연애하던 시절에 늦은 퇴근 후 오빠가 싸 온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차에서 먹고 잠실 샤롯데 오페라 극장에서 음악회 데이트 후 13년 만에 단둘이 음악회 데이트를 한 날이었다.신혼 시절, 1호가 뱃속에 태아로 있어 아직 세상 밖으로 태어나지 않아 울지 않고 부릉 우르릉 하며 태동만 하는 진동모드 일 때 가끔 영화 보러 갔던 이래로 첫 문화생활이기도 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촛불이 무수히 켜진 로맨틱한 공간에서 남편과 단둘이 음악회 관람!
둘째를 임신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수년간 읍 면 리에 사느라 그런 인프라가 전무하다가 우리가 광역시에 이사 왔음을 체감한 날. 정말이지 특별하고 즐거운 날이었다.
8월 12일은 내 생일이기도 해서, 생일 당일은 아이들과 복작복작 지내고 그다음 주말에 남편이 부부만의 시간을 마련한 자리이기도 했다.
이게 얼마 만의 단둘이 보내는 저녁이란 말이야앙~? 여보, 그래서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뭘 하러 간다는 건지 어딜 가는 건지 알려주진 않고 '좋은 데 가니까 준비하라'는 남편의 말에 신나서 생일선물로 아이들이 사준 ZARA구두를 신고 신데렐라처럼 다녀왔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배가 아파졌던 것이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병실로 입원 고고싱~
바다가 보이는 병원에서 일주일 입원 후 29화요일에 대학병원 비뇨기과와 산부인과 진료를 보았다. 그리고 곧장 9월 6일에 요관스텐트 시술을 받게 되었다. 재발 됐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방향을 제시해 주시지 않는 P교수님께 절망하고, 낭만닥터 선생님을 만나러 새벽에 현장대기 줄을 서서 16시간을 꼬박 기다린 날은 9월 18일.
그리고 그다음 주 9월 25일에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내 건강이 갑자기 이리되었으니 이번 추석은 조용히 지내자고 가족 단톡방에서 합의가 되었는데, 연휴 전 날 갑자기 우리 엄마 발목이 똑 부러지시는 사고가 일어난다.그래서 나 홀로 비행기 타고 친정에 가서 엄마 수술과 회복을 지켜드렸다. 부모님에 대한 책임을 대신 나누어질 형제가 없는 외동은 이럴 때 참 마음이 시리다.
보름새 부산-인천을 두 번 왕복하고 나서 내 컨디션은 바닥으로 처박혔다. 매 순간이 가시 돋친 소변줄을 끼고 생활하는 것 같았다. 걸핏하면 변기에 콜라를 부은 것 같이 짙은 혈뇨가 쏟아졌다. 그런데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회원들 모임, 교육사역위원회 모임, 남편이 담당 중인 교육부서 교사 회식, 예배사역위원회 모임, 전교인 체육대회, 내가 소속되어 섬기는 기도회 사역 스탭들 회식, 주일예배찬양팀 회식, 구역을 마무리하며 초청, 우리 교구에서 입김 좀 날리시는 권사님네 독자 결혼식, 우리 2호 태권도 공인단 심사, 똘똘한 1호 체스대회 등... 행사가 없이 조용한 주간이 단 한 주도 없었다.
앉기도 걷기도 불편한데 그 와중에 하던 사역은 계속했다.나 역시도 갑자기 다 내려놓는 건 싫었다. 너무 아프고 괴롭지만 그렇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앞에 나서길 수줍어하는 나는 하는 일이 다 건반 앞에서 섬기는 일이었기에 고정으로 대신 섬겨줄 대체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자리가 한두 개도 아닌데 매번 저는 못 가요 안 돼요 하기도 그렇고, 어디는 나가고 어디는 안 가고 하면 자기는 중요하지 않은가 하고 누군가 시험에 들게 될까 걱정이 되어 형평성 있게 참석하느라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한 번은 사모님은 식사 다 했어요? 음식이 별로예요? 왜 밥 먹다 세상 잃은 표정으로 앉아계세요? 하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내가 이럴까 봐서 제일 구석자리에 앉아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방향 자리로 앉았는데도 이렇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하하....
빡센 주일을 보내고 더 이상 쓸 힘이 없는데 저녁에 식사자리가 있어 꾸역꾸역 나간 날이 있었다. 그날따라 식사가 끝나도 다들 일어날 생각이 없이 계속 말씀들을 나누셔서 너무 지친다고 생각하던 중에, 어떤 분이 내 사정을 어디선가 들으시고 사모님 괜찮냐고 힘들면 그냥 먼저 가라고 이런 데서 체면 차리느라 사모님 몸 다 상한다며 사모님 먼저 일어나도 우리들 아무도 나쁘게 생각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가장 행복하고 안정된 날들이 이어진다고 느끼던 순간에 날벼락을 맞았고. 나도 이렇게 됐는데 엄마는 발목이 부러지시고 암이 재발하시고 작은 아이도 입원을 하는 등더 이상 악재가 몰아칠 수 없다고 여기던 순간에 꿈에 그리던 브런치 작가가 되는 등,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나는 참말로 한 치 앞도 모르는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모든 걸 준비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일은 항상 여기저기 산재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