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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Oct 06. 2023

명절날 친정 앞 놀이터에서 쭈그리고 잔 사연

엄마, 우리 시어머니도 나 이렇게 안 부려먹어


남편은 무녀독남 외동아들이다.


나는?

친가 5남2녀 외가 7남3녀로 조합된 빵빵한 대가족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우리 부부가 태어날 즈음에 정부는 이와 같은 외침 아래, 산아제한정책이 한참이던 시절이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정부에 참 협조적인 분들이셨던? 것 같다.


물론 속사정은 따로 있었는데,


어머님은 역대급 입덧으로 무려 열 달 내내 거의 드시질 못하셨다고 한다. 아기를 또 임신하면 또 그 입덧을 겪게 될까 두려워 둘째는 엄두도 못 내셨다고. 놀라운 것은 그렇게 드신 게 없는데 아기는 4.5키로를 넘는 우량아였다.

우리 엄마는 임신중독증이 너무너무 심해서 생사를 오가는 임신기간이었고, 낳는 날에도 행운의 여신은 엄마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나 보다. 제왕절개 수술이 잘못되어 장이랑 자궁이 같이 여며져서 불임이 되고 말았다.


이런 사연으로 우리는 양가 가족이 모두 모여도 성인 여섯 명에 아이  명뿐인 단출한 집안이다.

명절도 짧은데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고 날짜 쪼개 쓰느니, 펜션이나 리조트에서 다 같이 여행 겸 명절을 쇠거나 집을 오픈하는 순번을 짜거나 해서 다 함께 만나는 게 우리 집의 명절문화가 되었다.





이번 추석은 친정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방에 사니까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아, 부지런히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가 장을 봐 놓으셨다고 넌 오기만 하면 된다 하시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친정에 도착했다.

엄마가 국을 끓이고 갈비를 삶고 나물을 다듬을 테니 나더러 전만 부치라고 하셨다. 앞치마를 하며 주방에 들어서는데....


동태만 세 소쿠리가 쌓여 있었고 애호박은 30개쯤 있었고 동그랑땡이 김장김치 버무리는 통에 고운 자태로 빚어져 있었다. 꼬지전용 맛살도 다보탑처럼 척척 쌓여 일렬종대를 이루었다.


"엄마! 이거 누가 다 먹는다고!!"

"얼마 안 돼 이거~ 이거보다 적으면 걸 누구 코에 붙이니?"

그래 엄마네 전기프라이팬은 크니까 한판에 옹기종기 삼겹살 굽듯이 잘 줄 세워서 부치면 금방 되겠지?

많다고 이제 와서 호소해 봤자 엄마가 식재료를 그냥 다시 냉장고로 들여갈 일도 없을뿐더러, 불평하면 내 맘만 무거워지지, 하고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갔다.

두 시간이 지나갔다..

세 시간이 지나갔다....


눈 앞이 진짜로 캄캄해지는 경험을 했다.


아이를 둘 낳으면서도

내, 눈앞의 컬러가 변해본 적은 없었소만!!


화장실을 가는 체 하며 일어나, 굳이 주방에서 먼 안방화장실로 가서 누었다. 그러다 눈치를 봐서 재빨리 현관으로 빠져나왔다. 집 앞 놀이터 벤치에 허둥지둥 피신해 앉았다.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 대체 언제 오시는 거예요.

아니, 서울에서 인천 오기를 대체 언제까정 오는거여~"

"응응 금방 가. 가락시장에서 뭣 좀 사가지고 가느라고 출발이 늦었지이."

아 어머니, 나 전 부치다가 눈앞이 캄캄해 지금!
어머니가 빨리 와서 부치셔야지 이거~
나 혼자 다 하잖여!!


시어머니께 전화해서 명절날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대체 언제 오시는 거냐고 닦달하며 어머니 오시면 일감 토스하고 놀 궁리나 하는 며느리라니 ㅋㅋㅋㅋㅋ

내 하소연에 어머니는 웃음을 터트리시며,

네가 전을 얌전하게 잘 부치니까 엄마가 계속 시키지! 눈 한번 딱 감고 다 태워블어 그냥~!
그럼 안 시키실걸.


이런 조언을 해주시는 시어머니는 또 어떻고 ㅋㅋㅋㅋ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는

아휴, 나도 모르것다아. 등이 너무 아프고 힘들다아아.

곡소리를 내며 벤치에 잠깐 몸을 뉘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한 40분 넘게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남편이 너 어디냐고 전화가 왔다.


맙소사.

친정 와서 쉬지도 못하고 일에 부쳐 허덕이다 엄마 눈 피해 놀이터 벤치에서 쭈그리고 자는 딸이라니.

뭔가 많이 뒤바뀐 집에는 틀림없다.






#우리엄마 눈은 빛나는 사우론의 눈

#엄마가 친엄마가 아닌걸까요

#전 사다먹음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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