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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Dec 10. 2024

진짜 이혼할 용기도 없으면서

어른들은 듣는 척을 잘하고, 아이들은 안 듣는 척을 잘한다. 부모님이 싸웠다는 걸 모르는 척, 지금 집안의 공기가 무척 춥다는 걸 못 느끼는 척, 괜찮은 척.

그러니 불행한 결혼생활은 자녀에게도 불안이다.


내가 생겨서,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것도 아니면서 엄마는 맨날 내 탓을 했다.

너만 아니면 엄만 아빠랑 진작에 이혼했어. 난 너 때문에 살아.

아, 이혼해! 이혼하란 말이야!

나중엔 정말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상처를 받을까 봐 나는 끝내 꾹 참았다. 그래서 김창옥 아저씨 강의가 좋았나 보다. 아저씨네 부모님도 오지게 많이 싸우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맨날 창옥아저씨한테 1번, 엄마랑 살래? 2번, 아빠랑 살래? 물어보셨다고. 아저씬 3번, 고아원을 고르고 싶었다고 했다. 그 얘길 들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철철 울었는지.




#1 엄마의 이중 메시지


엄마의 이중 메시지에 나는 너무나 지쳤다.

아빠가 없어졌으면 좋겠고,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 평생의 후회이며, 아빠만 없으면 엄마 인생은 날개를 단 듯 훨훨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또 돌연 어느 날은 아빠가 너무 긍휼하고 불쌍해서,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신의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중간에서 나는 어쩌라는 건지.. 엄마의 편이 되어 아빠를 미워할 수도, 눈앞에서 울고 있는 엄마를 모른 체할 수도 없었다.


내가 남편과 연애할 때, 엄마는 적극 찬성했다. 오련이는 목회를 하는 사람이니까, 가정의 제사장 될 거야. 늬 아빠랑은 다를 거야. 하며 결혼을 추진했었다. 그리고 오련이가 이서방이 된 뒤,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이서방더러 목회 그만두고 사업하라고 그래” 했다. 엄마가 목회하란다고 하고 말란다고 마냐? 생각이 들었다. 또 이서방 풍채도 크고 아토피도 있으니 고기는 주지 말라면서, 처가를 방문한 이서방에게 각종 고기요리를 대접했다.


아빠가 퇴근 후 어쩌다 동료들과 맥주 한잔하고 귀가가 늦어지면 난리가 나면서, 집에서는 손수 담금주를 만들었다. 아빠가 의처증이 있다고 하면서, 정작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별별 상상을 다 하며 불안해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건 엄마였다.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목사님께 푹 빠져서 밤낮 교회에 가 물심양면 하다가, 돌연 여기는 하나님이 없다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했다.


엄마_ 제발_ 하나만 해_



#2 엄마의 찬란한 거짓말


실은 내가 결혼할 때, 고모가 비용을 대주셨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우리 부모님은 놀랍게도 그제까지 모은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고모는 평생 영업일을 하시며 동생들을 건사한 진정한 K장녀(실제는 작은딸) 셨다. 나도 저렇게 능력 있는 여성이 되고 싶기도 했다. 아들밖에 없는 고모께 내가 딸이 되어 드리며 앞으로 제2의 엄마로 모시고 살아야겠다, 다짐했었다. 고모 생신날, 퇴근길에 고모네로 가 우리 둘이 조촐하게 생일 케이크를 불었던 기억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엄마는 내게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네 고모의 권유로 보험을 들었는데, 그게 중간에 털어 쓸 수도 없고 만기가 되려면 너무 멀었고 만기가 되어도 5년을 묵혀야 탈 수 있는 그런 상품이었다며 어쩌고 저쩌고... 형편이 어려운데 고모가 자기 욕심으로 너무 과한 상품을 설계해 와서 들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지금 당장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듣다 못한 나는 엄마 대신 나서 고모와 전쟁을 벌이고, 그 뒤로 고모와 나의 관계는 끊어졌다. 고모와 내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 엄마는 뒤로 쏙 빠져 있었다.


사실, 내게 작은 고모는 만남이 기다려졌던 포근한 고모였다. 남자 동생들로 가득한 친가에, 고모의 아들은 유일한 손위형제였다. 오빠라는 존재가 너무 든든하고, 오빠는 유쾌함 그 자체인 사람이었기에, 고모와 오빠가 오기만을 언제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고모는 항상 조카들이 맛있게 먹도록 고기를 구워 일일이 얹어주시고, 밥상에 가장 늦게 앉는 분이셨다. 그러나 엄마의 말과 행동은 내가 세상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필터였고, 이로 인해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엄마와 대화를 하면 엄마는 항상 답이 있는 세상 속에 사는 사람 같았다. 엄마의 강한 확신은 나의 경계를 허물고 들어왔다.


예를 들어 고모 공갈젖 이야기도, 논리적으로 들어보면 말이 되지 않지만 라이브로 엄마의 표정과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도저히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엄마는 아산병원 교수님이 자기가 지금 있는 동네 병원에 왔었다고, 여기 과장님과 짜고 자기에게 해줘야 할 처치를 해주지 않고 죽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그래서 약이 나오면 일일이 무슨 약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일부만 골라서 먹었다.

다 못해, 그럼 가서 아이고 교수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인사라도 해보지 뭐라고 하시나, 했더니 인사할 수 없었던 이런저런 핑계가 있었다. 그럼 교수님이 왜 엄말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냐고 질문했더니 자기가 요새 약기운이 심해서 그런 건 대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약기운 때문에 본인이 착각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옵션에 없었다. 그런데 알아보니 공교롭게도 엄마가 입원해 계셨던 동네 병원은 아산병원과 협력병원이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엄마와의 면회를 마친 모든 가족들은 참말로 알쏭달쏭해지고 말았다. 이런 식이다.

나는 설령 교수님이 그러셨다 한들, 벌건 대낮에 인천까지 오진 않으셨을 거라는 생각이다. 본인 환자도 매일 줄을 서 있는 데다 그런 작당모의는 온라인으로 몰래 해야 맞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대체 누구간이 교수들이 작당씩이나 해서 죽이려 단 말이야. 스탈린이야, 김정은이야, 트럼프야? 엄마 말마따나 제약회사의 프락치 들이면 오래 살려놔야 계속 약을 팔 텐데.


관계가 끊어진 뒤에도 엄마는 내게 종종 고모와 며느리 이야기를 했다. 며느리가 고모네 오지도 않고, 가끔씩 영상통화만 하며, 가끔 와서도 손님처럼 앉아있다 휙 간대, 그런 내용들이었다. 고모는 이런 명품 가방 필요 없는데, OO이가 즈이 엄마한테 미안하니까 이런 거나 사서 보낸다잖아. 그래서 고모가 자기한테 이 가방을 줬노라고, 엄마는 내게 얘기했었다.

알고 보니 고모의 며느리는 ‘홀로 남편을 키워내신 어머님과 친해지고 싶다’며 신혼 때 한집에 함께 살기도 한 사근사근함 만렙 며느리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는 나와 고모의 관계가 이미 끊어졌는데 왜 그런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했을까?

내가 고모댁에서 모녀처럼 둘이 알콩달콩한 저녁을 보냈을 때, 엄마는 불안하셨을까? 자기 딸을 뺏길지 모른다고 느꼈을까? 내가 아무리 고모를 좋아한다 한들, 내 마음속 엄마의 자리는 언제나 넘버원임을 엄마는 모르셨던 걸까?



#3 트루먼쇼의 진실


우리가 캠핑을 다니자 엄마는 자기도 ‘모터홈’을 하나 사야겠다며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티브이에서 봤는데 괜찮더라면서. 그런데 알아봤더니 중고 매물도 무려 5천만 원을 호가하기에 고사를 드렸다. 우리 부모님이 둘이서 캠핑을 간다고? 그럴 리 만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울엄만 중고는 쓰지 않으신다. 전에 쓰던 사람의 이 묻어있어 부정 탄다 하셨다.

새 상품을 알아봐 드려도 이러니 저러니 항상 부정적 피드백이 돌아오는데, 중고를 연결해 드렸다가 무슨 소릴 들으려고? 몇 해 전 남편이 좋은 뜻으로 양가에 안마 의자를 선물했다가 친정에서 들어온 갖가지 불만사항 때문에 얼마나 피곤했냐.

나 시집보낼 돈도 없고 대학 보낼 돈도 없었으면서 무슨 캠핑카를 산다고. 엄마는 그냥 우리가 재미있어 보이니 자기도 번듯하게 더 좋은 걸로 사고 싶었던 것뿐이다. 시골집에 가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노래를 부르시기에, 정 그렇게 소원이면 한번 해보시는 것도 괜찮겠다고 했더니 느이 아빠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발은 내딛지 않았다. 영영 별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얼마간 요양하는 거 누가 반대 한다고. 이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이혼을 입에 달고 살고, 죽고 싶지도 않으면서 죽을 거라고 말만 한 엄마.

우월감이 있으면서도 자기 비하가 심했던 엄마는, 매사 흑백논리였다. 내가 엄마 말에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제시하면 너는 내가 죽기를 바라냐, 로 시작해 무슨 온갖 영적인 해석들을 갖다 붙였다. 그 비약적인 사고의 흐름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나르시시스트도 아닌 것 같고 소시오패스도 아닌 것 같은데. 엄마는 대체 왜 저럴까? 아니면, 엄마를 이토록 힘들게 느끼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숱하게 고민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나는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물론 정확한 건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겠지만,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인격장애의 모습은 소름 끼치게도 엄마와 닮아 있었다.

- 감정의 극단적 변화

- 지나친 이상화와 평가절하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맺음

- 극단적인 목표나 가치를 찾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일이 잦음

- 실제나 상상 속의 버림받음에 과도하게 민감하며, 이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함

- 내면의 공허함을 지속적으로 느끼며, 이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행동함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들이 쓴 수기는 내 마음을 울렸다. 꼭 내가 쓴 글이라고 느껴질 만큼, 그들과 나는 닮아있었다.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처참히 아프고, 두렵고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그립고 사랑하는 마음.


엄마와의 관계는 나를 형성한 큰 축이었다. 엄마를 사랑했고, 미워했고, 혼란스러웠다. 엄마의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늘 중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그러는 동안 나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도 자신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엄마는 나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다치게 했을 뿐이었겠지.

엄마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나는 더 이상 왜 그랬는지를 묻기보다, 이제는 나를 단단히 세워갈 답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이 나처럼 혼란 속에서 길을 찾으려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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