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다. 나는 안방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여섯 살 무렵부터 내방이 있었던 것 같다. 혼자 방을 쓰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창밖 불빛을 하늘의 별처럼 바라보다 잠들기도 하고, 내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다 스르륵 꿈나라로 떠나곤 했다. 조용히 책을 읽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내 방에서 항상 뭘 그렇게 사부작댔는지 모르겠다.
청소년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내 방에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겠다며 아침 6시에 일어나 이보영 씨의 라디오를 듣기도 했고, 한밤의 스윗뮤직박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새벽 2시까지 깨어있기도 했다. 나는 혼자 지내기 만렙 유단자였다. 안방에 갈 새가 없었는지, 아니면 안방에 가고 싶지 않아서 내 방에서 할 일을 끊임없이 개발했는지, 뭐가 먼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안방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였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마흔 살이 되었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 침대에 누가 눕는 게 싫다. 화가 나는 지경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사촌들이 오거나 구역예배를 우리 집에서 하는 날은 미쳐 나갈 지경이었다. 결혼 후에도 이 습관은 계속됐다. 남편과 한침대를 쓰면서도 남편이 자는 쪽에는 웬만하면 눕지 않는다. 나는 내 자리에만 누웠다. 언제나 그랬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가 없는 사이에 자꾸 내 침대에 누웠다 나간 흔적을 남겼다. 정말 너무 싫었다. 외출하기 전에 엄마 없는 동안 내 자리에 눕지 말라고 항상 강조했다.
아이들은 그러마고 찰떡같이 대답만 하고 늘 내 자리에 누워있다 나갔다. 실랑이가 이어지던 어느 날 밤, 나는 아이들에게 정말 진지하게 물었다. 대체 왜 너희들 침대가 따로 있는데 그리고 아빠 자리도 있거늘 왜 유독 엄마 쪽 자리에 맨날 눕는 거냐고. 그때 아이들이 했던 대답.
여기엔 엄마 냄새가 나서 좋아.
그 순간,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무언가가 마음에 스며들었다. 나는 엄마 냄새를 더 맡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집에 오면 자연스럽게 엄마 냄새가 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후각이 무척 예민한 사람이다. 계절마다의 냄새를 민감하게 맡고, 음식도 코로 간을 본다. 물만 마신 컵도 반드시 뜨거운 물로 설거지한다. 이전에 마셨던 사람 냄새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코는 금방 피곤해지는 기관이라 조금 지나면 잘 모른다고 하는데 나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좋은 냄새도, 나쁜 냄새도, 각기 그 주파수를 가진 채로 계속 나의 후각을 자극한다.
몸의 컨디션도 코에 전해오는 특유의 냄새로 안다. 내 몸 상태가 오늘 좋다, 나쁘다 하는 걸 말이다. 사람마다 다른 향을 풍기는 걸 느낀다. 미친 예민댕이로 보일까 봐 굳이 무슨 향이 난다는 걸 언어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남편 냄새 아이들 냄새 좋아하는 냄새다. 물론, 씻었을 때의 냄새만 좋아한다. 아주 쪼금 콤콤한 정도까지만 괜찮다.
그런데 엄마 아빠 냄새는... 내 기억에 평범하거나 익숙했던 적이 없었다. 아빠는 항상 가리지 않고 재채기를 하셨고, 아빠가 재채기를 하시면 난 숨을 참았다. 엄마 아빠가 함께 계신 안방에는 늘 묘한 공기가 감돌았다. 잠시간 화기애애한 듯하다가도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고 싸움이 시작되곤 했다. 그 숨 막히는 공기의 냄새가 너무 싫었다. 그 방의 냄새는 공기의 흐름만큼이나 갑작스럽고 복잡했다. 안방에 들어가는 게 엄마 냄새를 맡는 즐거움보다 훨씬 불편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었다.
평화로운 주말 오후, ‘호기심천국’이나 ‘양심 냉장고’, ‘남자의 자격’등 재미난 프로그램이 많았다.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면 나는 어디를 특별히 나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길지 않았다. 아빠는 자꾸만 티브이 속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고 되물어 흐름을 깨셨고, 재미있는데도 웃지 않으셨다. 우리 세 사람의 웃음 포인트는 제각각이었다. 뭐래? 하면 설명하고, 그러느라 웃을 타이밍을 놓치고, 엄마가 아빠에게 핀잔을 주고.
평화가 깨지는 순간은 마치 갑자기 비눗방울이 터져버리고 현실에 덩그러니 추락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엄습하는 현실의 냄새는 무척 썼다. 현실의 냄새가 몸에 묻어버리면 내 방으로 피신을 해도 한동안 계속 온몸에 낯선 공기가 감돌았다.
그 냄새는 나에게 현실이었다. 방금 전까지 본 예능 프로그램 속 이야기 ㅡ엉뚱한 상상을 현실로 바꾸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저런 멋진 노력과 도전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저건 다 남들 이야기지. 이렇게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 방에 있었다.
닫힌 방에서 나는 벽 너머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굳이 더 맡고 싶지 않은 냄새였다.
나는 방 안에 있다.
여기 조금 남은 엄마의 냄새로도 충분하다.
엄마 냄새가 좋아서 내 자리에 눕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어릴 적 엄마 냄새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이유. 냄새가 아닌, 그 안방의 공기가 나를 밀어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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