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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Dec 13. 2024

양면 색종이 사용법

꼼꼼함과 빠름은 서로 반대에 있다.

정확하면서 신속한 것은 사실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미션이다. 신속정확. 중국집 젓가락 포장지에서 익히 봐와서 그게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으나, 사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양 끝에 있는 성격이다.


사람은 양면색종이 같다. 어떤 이의 장점은 뒤집으면 곧 단점이 된다. 그 장점이 도드라질수록, 단점도 치명적이다.

남편과 연애를 할 때 이 사람의 둥글둥글한 면이 정말 좋았다.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더니, 매사 정확하지가 않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하는 게 짜증이 나 미칠 것 같았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도 미웠다. 틀린 걸 알았으면 그렇게 웃지만 말고 사과를 하란 말이야.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고 그냥 둥글둥글한 것, 이것은 이 사람의 특성이다. 내가 남편의 앞면을 놓고 보면 나는 예민하고 고단할 때 남편에게 와서 기대어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의 뒷면을 놓고 보면 나는 집안의 가장된 사람이 티미한(?) 탓에 관리비는 제때 나가고 있는지, 한시도 해이해질 틈 없이 정신 꼭 붙들어야 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확한 걸 좋아한다. 시간 약속이든 단톡방 정리든 입장이든 매사 명확하고 투명하다. 남편이 나의 이런 색깔을, 자신에게 없는 점을 우리 아내가 채워주니 고맙다,고 생각해주지 않는다면 우리 부부는 매일 싸울 일밖에 없을지 모른다. 너는 왜 매사 그렇게 똑부러져 주변을 피곤하게 하느냐고 하고, 나는 당신은 왜 항상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 하느냐고 맞받아치겠지.


사람마다 독특한 색깔이 있다. 어떤 면을 바라볼 것인가,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다. 관점에 따라 꽃길이 열릴 수도, 지옥문이 열릴 수도.



우리 부모님을 보면 나는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왜 저렇게 서로 뒷면만을 바라보며 끝없이 싸우시는 건지. 벌써 어떤 상황이 생기면 이제 누가 무슨 말을 하고 그러면 또 무슨 말로 받아치고_ 50수 100수가 훤히 내다 보였다. 그럼에도 두 분은 항상 꼭 그렇게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셨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어떻게 말씀하시겠지, 그게 너무 피곤해서 그냥 아무 말도 않게 되었다.

두 분 다 절대 한치의 변화 없이, 그저 서로를 탓하고 저쪽이 먼저 바뀌기만을 바라셨다. 가끔 변화가 생기나 싶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이만큼 노력하는데 왜 당신은 안 하냐”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런 태도는 변화가 아니라 간보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서로 간만 봐서는 절대 새로워질 수 없다.


우리 엄마가 그토록 자기 세계에 갇혀버리게 되신 것은 내가 입을 다물어서일까?

엄마는 맨날 뭐가 그렇게 깝깝하다고 했다. 교회도 갑갑하고, 대한민국도 답답하고, 남편은 자잘하고. 세상 모든 게 우리 엄마를 담아내기엔 너무 작은 그릇이었다.

결혼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엄마와 공유하고 싶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고, 결국 행복의 비밀은 관점에 있더라는 간증을 나누고 싶었다. 현상이 문제가 되는 건 결국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사고의 틀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불행하고, 힘들어진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니 친구냐. 너 대학 나왔다고 엄마 무시하냐. 너도 엄마 나이 먹어봐라. 인생이 그렇게 잘난 니 말대로 되는 줄 아냐.” 등으로 원천차단하셨다. 그러시면 나한테 그렇게 친구한테도 차마 못 할 이야기들을 다 하시면 안 됐는데_ 속상할 뿐이다.


엄마는 나에게, 부부 침실에서 있는 일들도 이야기었다. 느이 아빠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이, 아빠의 단점을 내게 말하고 또 말했다. 서른일곱넘은 어느 날, 비로소 용기 내어 엄마에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엄마,
자식에게 제 부모 욕을 하는 것은,
자식의 자존감에
정말 치명타를 입히는 것 같아..



내가 언제 없는 말 했냐! 이것이 우리 엄마의 논조였다. 

내가 인생 살면서 때로 어려운 일을 만나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십자가 앞으로 가라고, 자기는 갔다며 입찬소릴 했다. 아닌 것 같은데... 십자가 앞에 다녀오고도 저만큼 남은 건가? 엄마가 그토록 말씀하셨던 깝깝하다는 말은 어쩌면 스스로의 틀을 깨고 나가고 싶어 했던 엄마 속사람의 외침은 아니었을까?




엄마도 좋은 사람

아빠도 따뜻한 사람이잖아_

우리, 사랑하면서, 그 사랑 표현 좀 하면서 살자고_


아빠가 말로는 다 표현 못하지만 타고난 꼼꼼함으로 엄마가 편안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준비하는 점에 엄마가 고마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엄마가 적극적으로 아빠가 하지 못하는 영역들을 용감하게 처리할 때, 아빠가 엄마 손을 잡아주는 작은 순간을 나는 간절히 보고 싶었다.


언제까지 싸울 거야

참, 젊디 젊은 우리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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