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진짜였다. 내가 상속분쟁에 휘말리게 되다니. 나는 상속이란 늘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신데, 부모님의 재산은 내 것이 아니고 홀로 남으신 아버지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의 장례가 끝난 후, 그 평범했던 믿음이 깨졌다.
나는 장례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집중적으로 치료받던 게 있어 장례 후 일단 집으로 내려갔다. 정리하지 못한 유품들은 광복절에 다시 와서 제대로 하겠다고 했는데, 아빠가 반기지 않으셨다. 딸이 먼 거리 오가야 할 게 걱정되고 미안하셔서 그런가 싶어, 서울에 다른 볼 일도 있어서 겸사겸사 가려는 것이니 괘념치 마시라 했는데 한사코 오지 말라셨다. “약속이 있다”고도 하시며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다. 나중에 그날 뭐 하셨냐고 했더니 계곡에 다녀왔다고 하셨다. 혼자.
‘아빠가 쉬는 날 자지 않고 어딜 나갔다고? 별일이 다 있군.’ 평소에 쉬는 날엔 좀처럼 외출하지 않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 잠만 주무시는 분이었기에 의아했다.
올초에 엄마의 모피코트가 없어진 사건이 있었다. 엄마가 겨울에 속초에 무슨 힐링센터에 입소해 두 달간 집을 비웠던 즈음 사라졌다고 했다. 모피코트는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엄마가 모피를 꺼내 입는 날은 한파가 닥친 날이 아니라, 엄마에게 가오가 필요한 날이었다. 돈푼 깨나 줬더니 가벼우면서도 따뜻하다며 만족스러워하시던 표정이 생생하다. 게다가 모피코트는 부피가 상당해 어디 옷 서랍 틈새에 들어갈 일도 없는데, 옷장을 열면 늘 있던 모피가 없어지다니. 그것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엄마 장례를 마친 후 열흘이 갓 지난 시점에 엄마의 패물을 찾으셨다. 그건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참 전에 내게 주셨기에 나한테 있었다. 그러니? 하고 끊으셨는데 기분이 묘했다. 상처하고 와이프 보석부터 찾는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석연치 않은 점은 더 있었다.
추석에 집에 갔는데 반찬들이 꽤 많았다. 라면만 드시고 계시진 않을까 걱정했던 우리 부부는 냉장고 가득 채워진 반찬들을 보고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아빠는 그것들을 반찬가게에서 샀다고 했다. 엄마가 늘 걱정했던, ‘저 인간은 나 없으면 자기 밥도 못 차려먹어’ 같은 일이 없어 안심되었다. 한편으로는 진짜 아무것도 못 했었던 우리 아빠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혼자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어 안된 마음도 일었다. 그런데 그 반찬들은 엄마그릇도 내 그릇도 아닌, 이전에 우리 집에 없던 사용감 있는 반찬통들에 담겨 있었다.
정말 이상했던 점은, <진미오징어채>가 또 있었다는 점이다. 장례 후 아빠 곁에 남아 적적함도 달래 드리고 유품정리도 많이 돕지 못하고 부산에 내려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나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시는 반찬, 진미오징어채 볶음을 한 상자 가득 만들어 보냈었다. 추석 때까지도 내가 만들어 보낸 반찬이 냉장고에 아직 여러 통 있었다. 집에 이미 같은 아이템이 있는데, 굳이 이걸 또 돈 주고 샀다고?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빠는 내가 마요네즈 듬뿍 넣어 고소하게 볶아낸 오징어채 반찬을 무척 좋아하셨다. 엄마가 계실 때도 내가 친정에 갈 때마다 만들어드렸고, 그날 저녁이면 아빠가 꼭 밥 두 그릇을 비우셨다.
아빠의 의처증 때문에 엄마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에게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늘 의심한 건 엄마였다. 도대체 누가 진실했던 분이었을까? 나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돼버리고 말았다. 지독하게 고독하고도 추운 심리게임이 시작되었다. 이 게임의 주최자는 누구일까?
엄마의 모피코트 실종사건, 아빠의 기묘한 행적, 진미오징어채 반찬사건까지. 이런저런 석연치 않은 모습들 때문에, 나는 상속포기를 하지 않겠으니 부동산 상속지분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엄마의 사망보험금은 이미 모두 아빠에게 드린 뒤였다. 그러자 아빠는, 내게 쌍욕을 하셨다. 아빠가 내게 그렇게 극대노 하신 적은 처음이었다. 그 점이 제일 이상했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 몫을 다시 아빠에게로 증여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엄마는 통증이 그렇게 극심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산소통을 단 채 면사무소에 직접 출두하여 시골 작은엄마네로 전입신고를 하신 분이다. 엄마의 추진력 덕분에, 장례를 치르는 데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시골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인천 관내에서 화장도 하고 가족공원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덜컥 주소지를 옮겨버리신 바람에 관내 자격이 모두 상실돼 장례일정을 잡느라 우리 부부가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른다. 그런 무소의 뿔 같은 사람이, 말로만 증여 뜻을 밝혔다고? 아니, 엄마가 굳이 공동명의로 해두신 것은 하나뿐인 딸에게 주려는 큰 그림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아빠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엄마는 죽음을 준비할 날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왜 자신의 ‘영정사진’을 준비했는지만 그렇게 집요하게 새벽이고 언제고 나에게 되묻고, 정작 꼭 했어야 할 말들은 끝내 하지않고 가버리신 건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의심과 다툼이 쌓여갈수록 내 안의 어떤 부분이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다. 왜 우리 가족은 서로를 이렇게 반목하며 사는 걸까? 아빠를 의심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남편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다. 아빠의 행동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지만,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모든 조각이 맞물릴 때마다 내 마음속 의심의 문은 자꾸 열렸다.
가끔 고요한 깊은 밤중에 이 인간이!! 하며 엄마가 아빠방으로 달려들고 우당탕 쿵탕 육탄전이 벌어지곤 했는데, 나는 왜 그러시는지 나가볼 엄두를 못 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싸움은 너무 무서웠다. 한밤의 육탄전은 특이점이 있었는데, 평소엔 두 분의 팽팽한 공방이 주를 이뤘다면, 이때는 엄마의 일방적인 분노 폭발로 마무리되곤 했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후회가 되기도 한다. 두 분이 그렇게 싸우실 때 한 번쯤 나가볼걸. 대체 무슨 일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경위를 알아볼걸. 깊은 밤, 아빠는 방에서 뭘 하셨던 걸까?
엄마의 의심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한지, 정말 뭐가 있으셨던 건지 나는 알 턱이 없으니 내 몫으로 법이 지켜주는 만큼을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없이도 난 여태껏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 테지만, 나는 그럭저럭 살았어도 아이들에게 빈손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럽다.
누군가를 만나시더라도, 부모님의 재산은 새로운 어떤 분이 아닌 내게 와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빠는 아빠 혼자 다 모은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엄마가 경제활동을 쉰 적은 없었다. 아빠가 어떻게 생각하시든, 현재 있는 재산은 엄연히 두 분이 ‘함께’ 모으신 거다. 그리고 나는 두 분의 단 하나뿐인 소생이다.
“내가 모은 재산, 다 내 건데 내가 왜 너에게 줘야 하냐. 내가 어떻게 살든 말든 너는 관심 끄고, 장례도 안 치러줘도 되니 상관 말라.” 아빠의 날 선 말에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내가 아빠를 못살게 굴려는 게 아닌데. 부동산 등기부에 내 이름이 들어간다고 내가 맘대로 처분할 것도 아니고 아빠가 그 집의 주인이고 사시는 건 똑같은데. 엄마가 떠나면 이 집을 어떻게 하려던 계획이 있으셨던 걸까? 그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저렇게 화가 나신 걸까?
한편으로는 한 남자의 삶이 너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식을 경쟁자로 여기는 아빠의 시린 어깨가 보였다. 그동안 자기도 부모에게 받은 것 없이 가정을 일구느라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가장으로서 얼마나 숱하게 울고 싶고, 막막했던 날들이 있었던 걸까. 그러나 아빠를 긍휼히 여겨 아빠 뜻대로만 해드리면, 도리어 내가 불쌍해지게 되니 그럴 수 없었다. 우리의 곳간이 풍족했다면, 아빠와 나는 지금보다 조금은 달랐을까?
나는 아빠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어련히 나중에 주시겠지’ 하며 내 몫을 포기할 수도 없다.
부모가 되어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마음이 나올 수 있는지.
여러 가지로 헤아려보려 노력해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마음도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결국 스스로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부모님의 딸이자 동시에, 내 아이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가 조부에게서 마땅히 받아왔어야 할 상속을 받지 못해 애석한 부분은 내가 채워드릴 수가 없는 부분이다. 아빠가 그 점을 내게 요구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물은 결코 아래에서 위로 흐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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